우리는 '조주빈'의 서사가 궁금하지 않다
우리는 '조주빈'의 서사가 궁금하지 않다
  • 김혜진 기자
  • 승인 2020.03.30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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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연예스포츠신문] 김혜진 기자 = 인천의 한 전문대 졸업. 학점 4.17, 학보사 편집국장을 성실히 역임했던 1995년생 남성. 어린 시절 가정환경이 좋지 않았고 사람들의 관상을 봐주며 돈을 빠르게 모았다. 어린 시절 키가 굉장히 작았으나 전역하고 1년 동안 잠적하더니 정강이뼈를 절단해 키를 늘리는 수술을 했다. 20대의 청년이지만, 말투와 목소리가 마치 40대로 오해할 수 있어서 친구들 사이에서는 조사장으로 불렸다.

텔레그램에서 박사방을 운영하며 불법 성 착취물을 제작, 유포한 조주빈의 이야기다. 그의 신상이 공개된 후 여러 언론에서 그에 대한 사사로운 이야기들이 쏟아냈다. 328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그 행태에 정점을 찍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그것이 알고싶다> 측은 조주빈과 텔레그램 내 박사가 동일 인물인지를 분석했다. 그 과정에서 조주빈의 지인을 인터뷰하며 그의 가정환경, 성격, 생활상과 교우관계 등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덕분에 우리는 조주빈이 어린 시절 가난했다거나 가정환경이 불우했다거나 심지어는 키를 늘리는 수술을 했다는 것조차 알게 됐다.

동시에 조주빈은 괴물’, ‘악마’, ‘엄청난 아이등이 되었고 숨은 가담자나 공범은 지워졌다. 처벌과 피해자 구제를 위한 내용 역시 부족했다. 마치 누군가의 자서전을 본 듯한 느낌이었다.

시청자들은 조주빈의 삶의 궤적을 보여준 방송이었다며 분노했다. 한 시청자는 가해자 조주빈 내면이나 가정환경이 궁금하지 않다. 모든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이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다시는 이런 조악한 범죄자의 내면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미디어로 인한 2차 가해의 전형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특정 범죄자에 대한 이러한 행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났던 문제다. 언론은 20명을 살해한 유영철부터 정남규, ‘PC방 살인의 김성수까지 수많은 살인범의 지난 삶을 찾아냈고, ‘불우한 가정환경’, ‘학대 경험등으로 그들을 특정했다. 그리고 그들은 한결같이 악마’, ‘괴물’, ‘짐승등으로 일반인과 구분됐다.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고, 그를 매우 독특한 존재인 것처럼 여기는 행태는 범죄의 본질을 잊게 한다. 그들의 범죄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피해자가 피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나아가 새로운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논의를 지워버린다. 세상을 놀라게 한 잔혹한 범죄는 사회적 문제가 아닌 이상한’, ‘악마 같은특정 개인의 행동이기 때문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 개인만 사회에서 격리시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온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수차례 경험했다. 범죄는 반복되고 있다. 사회 부적응자 한 명에 의해 발생하는 일이 아니다. 이번 n번방 사건에 대해 수많은 전문가들은 과거 소라넷의 후예들이라고 보고 있다. 소라넷은 1999년 만들어져 몰카, 리벤지 포르노, 약물 이용 강간까지 수많은 범죄 행위가 일어난 사이트였다. 그리고 2016년 폐쇄됐다. 그 당시 소라넷 회원이 100만 명에 달했으나 폐쇄와 함께 처벌받은 것은 극소수의 운영자뿐이었다. 운영자에게도 제대로 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소라넷 사태는 가담자들에게 괜찮아. 안 잡혀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그리고 그들은 여러 플랫폼으로 퍼졌다. 아동과 청소년이 등장하는 영상물을 포함해 약 50만 개에 달하는 불법 촬영물이 게시된 에이브이스누프, 성 착취물을 조직적으로 산업화했던 양진호 웹하드 사건도 그들의 후예였다. 그리고 2020, 26만 명이 참여한 ‘n번방 사건이 드러났다. 범죄는 지속되고 있다.

박사는 이미 체포되었다. 그의 신상도 공개됐다. 미지의 인물, 검거해야 할 인물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범죄를 즐긴 인원이 26만 명에 달한다는 것 또한 밝혀졌다. 조주빈은 스스로를 악마로 칭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본인에게 특별함을 부여하고 싶은 욕망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n번방 사건은 조주빈의 단독 범행이 아니다. 26만 명에 달하는 가담자가 존재한다. 조주빈이 악마라면 26만 명 모두 악마다. 그리고 26만 명이 악마라면, 우리 사회에서 악마는 이미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조주빈이 어떠한 삶을 살았고, 어떠한 말을 했고, 어떠한 인물이냐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해당 범죄가 가능했던 이유, 피해자들이 벗어날 수 없었던 이유가 무엇이고 그에 대한 대처와 방안은 무엇인지, 가담자들을 어떻게 밝혀내고 처벌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법무부

법무부는 최근 가해자 전원을 끝까지 추적해 엄정한 처벌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국제 형사 사법 공조를 비롯한 모든 조치를 강구하고 피해자 보호와 법 개정 추진 등 디지털 성범죄를 뿌리 뽑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정치권도 관련 법안을 만들고 있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디지털 성범죄물이 있는 온라인 채팅방에 가입하거나 들어간 행위만으로도 처벌하는 내용의 디지털범죄단체 조직죄를 마련하고 텔레그램 n번방사건에 소급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전 국민이 n번방 사건에 분노하면서 적극적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실현까지 갈 수 있을지 우려의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국회에 이미 성폭력 범죄 관련 법안이 쌓여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진선미 의원이 발의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보면, ‘촬영물을 실제 유포하지 않더라도 이를 반포·판매·임대·제공 또는 공공연하게 전시·상영할 것이라고 고지하여 다른 사람을 협박하거나 강요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종배 의원이 올 1월 발의한 법안에는 강간, 강제추행, 강간살인 및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죄 등의 예비·음모행위자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 있다. 두 법안 모두 본회의로 넘어가지 못하고 잠자고 있다. 두 법안 뿐만 아니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성폭력 범죄 관련 법안은 176건에 달한다. 그 중 16건만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126건은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해당 법안들은 모두 현행법의 부족한 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발의된 것들이다. 충분히 논의되고 시행됐다면, n번방 사건이 사전에 예방될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우리는 유사 사건을 여러 번 겪어왔다. 이번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이 끔찍한 일은 또 반복될 것이다. 가해자의 히스토리는 궁금하지 않다. 이제는 성착취에 대한 범위는 어디까지 볼 것인지, 현재 유포된 영상들에 대한 처리 대안은 무엇인지, 현행법의 빈틈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구체적인 해법이 나와야 할 때이다.

 

 

사진이나 영상의 불법촬영·유포, 이를 빌미로 한 협박, 사이버 공간에서의 성적 괴롭힘 등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여성긴급전화 1366,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02-735-8994에서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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