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지 못한 숙제, 폭력
폭력 근절을 위해 자정능력 회복 시급
[한국연예스포츠신문] 강다솜 기자 = 학생 신분으로 운동선수를 꿈꾸는 이들에게 학교는 아이러니하게도 폭력적인 장소이다. 학생선수들은 학습과 선수생활을 병행하는 만큼 보통의 학생들과는 사뭇 다른 학창시절을 보낸다. 일반적인 학생들에게 ‘꿈’이라는 단어가 사춘기 내내 숙제와 같다면 학생선수들에게 ‘꿈’은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하다. 다만 꿈을 가진 값이라고 하기에 그들이 겪는 비정상적인 학습권 박탈과 무방비하게 노출되는 폭력적인 환경은 가혹하기만 하다.
노출된 폭력, 보호받지 못하는 선수
스피트 스케이팅의 이승훈, 키움 히어로즈의 안우진, 김해고의 김유성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폭력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점이다. 한국 빙상의 영웅으로, 한국 야구 최고 유망주로 주목받던 이들은 과거 폭행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며 징계와 신인 지명 철회라는 값을 치러야만 했다.
과거 해외 대회 참가 중에 후배를 폭행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출전 정지 1년이라는 징계를 받았던 스피드 스케이팅의 이승훈이 최근 징계가 종료되자 유튜브 개인채널에 사과영상을 올리며 세간에 얼굴을 드러냈다. 키움 히어로즈의 안우진은 고교시절 촉망 받는 유망주로 2018 KBO 신인 드래프트의 최대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고교 재학 시절 학교 폭력 사실이 밝혀지면서 키움의 1차로 지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데뷔해인 2018년 정규시즌 50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기도 했다. 김해고의 김유성 또한 중학교 재학 시절 학교 폭력 사실이 2021 KBO 신인 1차 지명에서 NC의 선택을 받은 이후 알려지면서 KBO 초유의 지명 철회라는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2019년 인권위원회가 초중고 학생선수 63,2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권실태 전수조사 결과에 의하면 일반학생 1.7배의 학생선수들이 신체폭력을 경험했으며 언어폭력은 9,035명, 신체폭력은 8,440명, 성폭력은 2,212명이 경험했다고 알려졌다. 이는 응답인원 57,557명을 기준으로 각각 15.7%, 14.7%, 3.8%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해당 조사를 통해 학생선수들이 경험하는 폭력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1. 지도자에 의한 폭력 행위
2019년 초중고 학생선수를 대상으로 이루어진 인권실태 전수조사에서 밝혀진 바로 초등학생 선수들이 겪은 폭력의 75.5%가 지도자에 의해 일어났다. 중학생 선수의 경우 43.8%, 고등학생 선수의 경우는 56.0%가 지도자에 의한 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구체적인 증언을 참고해 구체적 서술하자면 원치 않는 심부름이나 빨래를 시키는 행위, 불쾌한 신체 접촉을 하거나 성관계를 요구한 경우, 직접적인 폭력을 가하지 않더라도 폭력적인 행위로 하여금 공포감을 조성한 경우, 휴일을 보장하지 않는 과도한 훈련 등이 다양한 종류의 폭력 행위가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피해 학생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초중고 학생선수들 모두 공통적으로 신체적 폭력을 경험한 후 폭력의 내면화 경향이 나타났다. 폭력의 재생산,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상황까지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2. 선후배 간 폭력 행위
선후배 동료 간의 폭력은 초등학생 선수의 경우 비교적 적은 수치를 보였으나 성폭력 피해에 관해 전체 응답자 중 2.4%인 438명이 피해 사실을 밝혔다. 중학생 선수의 경우 50.5%가 또래선수에게 폭력을 경험했으며 금품을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했거나 온라인 따돌림 등의 구체적인 사례가 드러나기도 했다.
성폭력 피해에 관해 가해자는 주로 동성의 선배 혹은 또래라고 밝혔으며 과거 훈련장이 가해 장소였으나 최근 숙소로 변화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고등학생 선수의 경우 39.8%가 또래선수에게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더불어 중학교와 마찬가지로 휴대폰을 압수하는 행위가 다수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성폭력 피해도 중학생 선수와 마찬가지로 동성의 선배 및 또래가 가해자로 지목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가해 장소 변화 양상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초중고 학생선수 모두 성폭력 피해를 당했을 경우 소극적으로 대처해 가해자가 징계 및 처벌을 받은 경우가 매우 소수에 그치고 있어 이와 관련한 신고체계를 비롯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실제로 성인이 된 프로선수들이 인터뷰 등에서 공개적으로 혹은 개인 SNS에서 팬들과 소통하며 과거 당했던 학교 폭력을 고백하기도 했다. 프로야구의 모 선수는 야구를 포기하고 싶었던 적을 중학생 시절로 꼽으며 그 이유를 ‘많이 맞았기 때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최근 붉어진 예비 신인 선수들의 학교 폭력 과거 사실과 관련해 야구계 원로는 “과거에는 만연했지만 분명히 근절되어야 할 악습”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의견을 밝히거나 설명하지 않더라도 선수들의 인터뷰 속에서 학창시절을 추억하는 중에 “많이 맞았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단체생활이 문제의 시작?
실제로 육상부 주장으로 중학교와 고등학교, 대학 선수 생활을 해왔다고 밝힌 P씨는 “학생 운동선수들의 단체생활 자체는 사회성과 인내심, 절제력을 기를 수 있게 도와주며 일탈 등의 부정적인 영향을 관리 및 감독할 수 있기 때문에 긍정적이다. 하지만 단체생활은 곧 개인 시간이 줄어듦을 의미하고 신체적 우월성을 과시하려는 학생들로 인해 폭력에 쉽게 노출된다.”라는 생각을 밝혔다. 덧붙여 “운동선수의 조직 문화는 수직적이고 폐쇄적이기 때문에 내부 상황을 외부에 노출시키기를 꺼려하고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작은 문제일지라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라며 다소 폐쇄적인 문화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물론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지도자 선생님께 말씀드려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불미스러운 일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단체생활로 하여금 운동선수들에게 작용하는 긍정적인 부분이 명확하기 때문에 리더의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주장이자 리더로서 동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완만한 소통을 돕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더이상 눈감아 줄 수 없는 자체징계
성인 운동선수를 비롯해서 학생 운동선수들의 폭력 문제는 작금의 문제가 아니다. 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재생산 상황이 오랜 시간 지속되어 여전히 문제를 타개할 방안이 나오지 않고 있다. 앞서 인터뷰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운동부라는 특수성은 그들 조직을 더욱 폐쇄적으로 만들고 폭력 등과 같은 문제 상황에서 자정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 들어 폭력 문제에 대해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며 관련 사안에 엄중처벌할 것을 경고하고 있지만 운동부 내에서 혹은 학교 내에서 공론화를 피하기 위해 하는 '얼렁뚱땅' ‘묻고 덮기’식의 처리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폭력 사실이 밝혀진 지도자가 가벼운 징계 및 처벌을 받은 후 여전히 지도자로 활동할 수 있다는 점도 현재 학생선수들의 폭력 노출도가 위험 수준임을 보여준다. 실제로 몇해전 지방의 모 중학교 야구부에서 선수들에게 폭행을 동반한 단체기합을 준 사실이 지역주민의 신고로 밝혀지며 책임자가 형사처벌을 받은 사건이 있었다. 물론 그 책임자는 처벌이 끝난 후 자리를 옮겨 다른 학교의 지도자로 여전히 활동 중이다.
선후배 관계로 얽혀있는 또래선수들 간에 폭력이 일어난 경우의 대처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학교 폭력 의심 사례가 발견되더라도 신고학생 측이 학교폭력위원회 개최를 원하지 않거나 가해자 측이 초기에 사과하고 재발 방지 대책, 피해 회복 방안을 제시할 경우 학교장 자체해결로 종결지을 수 있다. 선배에 의해 폭력이 일어난 경우, 대부분 별다른 변화나 조치 없이 마무리되는 경우가 다반사인 이유이기도 하다. 가해 선수를 당장 학교나 팀에서 내보낸다거나, 가해 선수와 피해 선수 간의 거리 유지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해당 학교에서 선수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 참고 넘어가는 길을 택하게 된다.
自淨 (자정)이 필요한 때
학생선수와 관련한 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개선점은 단연 체육계의 자정능력 회복에 있다. 최근 KBO 신인 2차 지명과 관련하여 각 팀의 스카우터들은 고교 시절 성적이나 평가 뿐만 아니라 인성도 중요한 평가의 기준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1차 지명 당시 논란이 있었던 만큼, 학교에서 관련된 사건에 대한 내용증명을 받는다거나 생활기록부를 체크한다거나 해당 학교의 감독이 직접 각 구단에 사실을 확인하는 등의 다양한 검증절차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또한 장정석 전 프로야구 감독은 스카우터 인프라를 보다 확대해 프로 입단 직전인 고등학교 뿐만 아니라 더 하위의 학교까지 방문해 선수들을 직접 살펴볼 수 있게 된다면 조금 더 체계적이고 장기적으로 싹이 있는 선수들을 선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번 프로야구 신인 지명에서 체육계의 노력과 관심으로 충분히 폭력 근절에 대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현재는 운영되고 있지 않는 스포츠인권센터의 스포츠인권자료 코너에 기재되어있는 해외 선진국의 대책을 한국 체육계에 대입해 동영상이나 포스터 등의 평면적 자료가 아닌 보다 입체적인 아이디어를 강구할 필요가 있다. 현재 배포하고 있는 평면적 자료를 통해 관련 기관의 문제 인지 여부는 가늠할 수 있는 상태이다. 이제 더 나아가 폐쇄적인 분위기를 보다 완화시켜 점진적으로 국내 체육계의 폭력을 근절시킬 수 있는 입체적인 대책이 시급하다.
폭력은 결국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비도덕적인 행위를 한 선수들이 실력만으로 성공하는 사례를 계속해서 남긴다면 관련된 폭력을 근절하는 일이 더욱 어려워지게 된다. 스포츠가 대승적 차원에서 폭력 없는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기 위해 아마추어 선수들과 관련된 협회, 그리고 대한체육회 그 밖에 관련된 모든 기관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
야구와 테니스 등의 스포츠에서 페어(fair)는 규정된 라인 안에 떨어진 공 즉, 플레이가 유효하게 작용함을 의미한다. 체육계에 긍정적인 의미로 유의미한 지도자 혹은 선수로 기억되기 위해서는 규정된 라인을 잘 준수할 필요가 있다.
스포츠 정신, 페어 플레이는 그라운드 밖까지 함께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