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라는 틀 안에서 이뤄지는 범죄, ‘알페스’와 ‘딥페이크’
‘문화’라는 틀 안에서 이뤄지는 범죄, ‘알페스’와 ‘딥페이크’
  • 김수지 기자
  • 승인 2021.01.15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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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페이크'와 '알페스' 문제 공론화

'젠더 이슈'보다는 사건 자체에 초점 맞춰야 

'응답하라 1997'에서 정은지(성시원 역)가 선생님에게 직접 쓴 소설을 뺏긴 장면 / 출처: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7'에서 정은지(성시원 역)가 선생님에게 직접 쓴 소설을 뺏긴 장면/ 출처: tvN '응답하라 1997'

[한국연예스포츠신문] 김수지 기자 = "OO는 거칠게 문틈 사이로 XX를 밀어 넣곤 XX의 입술을 향해 돌진했다. XX의 하얀 입술이 빨갛게 부어올랐다” 해당 글은 지난 2012년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정은지(성시원 역)가 좋아하는 아이돌을 대상으로 직접 쓴 소설이다. 극 중 성시원이 쓴 이러한 소설을 ‘알페스’라 부른다.

‘알페스’는 ‘Real Person Slash’의 준말로 실존하는 동성 인물을 상대로 한 망상 연애담을 뜻한다. '알페스'는 소설부터 만화, 사진 등 다양한 형식으로 존재한다. 팬들 사이에는 ‘팬픽’으로 알려져 있으며, 팬덤의 한 문화로 자리 잡았다. 어느새 하나의 '문화'가 되어버린 ‘알페스’가 문제가 되는 것은 가상 인물이 아닌 실존 인물을 대상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실제 연예인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알페스’가 최근 공론화됐다. 래퍼 손심바가 자신의 인스타램에 "실존 인물을 대상으로 변태적 성관계를 하는 소설과 그림을 판매하고 집단적으로 은폐하며 심지어 옹호하기 바쁜 사람들이 있다고?"라는 글을 올린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비와이, 이로한, 쿤디판다 등 다른 래퍼들도 SNS를 통해 소신을 밝혔다.

알페스에 대한 공론화는 국민청원으로 이어졌다. 지난 1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미성년 남자 아이돌을 성적 노리개로 삼는 ‘알페스’ 이용자들을 강력히 처벌해 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그리고 단 사흘 만에 약 20만 명의 동의를 얻었다.

 

'알페스'가 불러온 문제

청원인은 “‘알페스’란 실존하는 남자 아이돌을 동성애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적나라한 표현을 통해 변태스러운 성관계나 강간을 묘사하는 성범죄 문화인데 이미 수많은 남자 연예인이 이러한 ‘알페스’문화를 통해 성적 대상화가 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알페스 문화 생산·소비자들은) 우리들이 계속 아이돌을 소비해 주기에 아이돌 시장이 유지되는 거다. 그러니 소속사도 우리를 고소하지 못할 것이다' 등의 태도를 보인다"라며 "소비 권력을 통해 피해자들의 약점을 쥐고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태도는 지난날 n번 방과도 같은 수많은 권력형 성범죄 가해자들의 태도를 떠오르게 한다"라고 지적했다.

해당 청원에 동의한 A 씨는 “‘알페스’ 대상이 나라고 이입을 해보니 화가 났고, 참을 수 없었다”라며 “아이돌이나 연예인들도 단지 ‘공인’이라는 이유로 그러한 것을 지켜볼 순 없을 것 같아서 청원에 동의했다”라고 밝혔다.

 

출처: 트위터
출처: 트위터

한편, 이러한 ‘알페스’는 팬덤 문화의 일부분이라는 주장도 끊임없이 들려온다. 이런 ‘알페스’는 ‘1세대 아이돌 그룹’으로 불리는 젝스키스, HOT 때부터 존재했다. 지난 06년에는 3대 기획사 중 하나로 불리는 SM엔터테인먼트가 ‘동방신기 팬픽 공모전’을 개최할 정도로 대부분의 소속사는 이러한 문화를 수용해왔다.

실제로 논란이 일자 트위터에 “알페스가 없어지면 엔터 산업 망하고 한국은 다시 ‘듣보잡’(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놈의 준말)이 될 것이다”라거나 “알페스 없으면 아이돌 판이 이 규모로 안 굴러간다”라는 등의 의견이 게재되기도 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4일 자신의 SNS를 통해 “'알페스'는 명백한 성범죄이고 돈으로 사고파는 시장까지 활성화돼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알페스는 여태까지 공론화된 적이 없어 다른 음란물 범죄보다 자신들의 음란물 소비 행위가 성범죄라는 인식 자체가 희박하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어 “알페스 옹호자들은 ‘알페스 때문에 K-POP 팬클럽이 성장한 것’이라는 황당한 주장도 하고 있다”라며 “자신의 성범죄를 합리화하려고 정상적인 팬클럽 문화까지 더럽히고 있는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딥페이크'란?

논란은 '알페스'에서 그치지 않는다. 1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여성 연예인들을 고통받게 하는 불법 영상 ‘딥페이크’를 강력히 처벌해 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게시됐다. '딥페이크'는 '딥 러닝(Deep Learning)'과 '거짓(Fake)'의 합성어로,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기존에 있던 인물의 얼굴이나 특정한 부위를 합성한 사진 및 영상을 말한다.

청원인은 “이(딥페이크) 기술을 사용하면 성인 비디오(AV)에 등장하는 여성의 얼굴을 특정 연예인 얼굴로 바꿀 수 있다”라며 “피해자들의 대부분이 한국 여성 연예인이었다”라고 밝혔다. 해당 청원은 올라온 지 이틀 만인 14일 오후 9시를 기준으로 35만 명이 동의했다.

가수 전소미가 춤을 춘 영상에 가수 아이유의 얼굴을 합성한 영상. 해당 영상은 SNS에서 큰 이슈가 됐다.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가수 전소미가 춤을 춘 영상에 가수 아이유의 얼굴을 합성한 영상으로, SNS에서 큰 이슈가 됐다.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과거 딥페이크 기술은 대부분 가짜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딥페이크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딥페이크 영상과 원본 영상의 구분이 어려울 정도이다. 딥페이크의 문제점은 ‘딥페이크 포르노’라는 장르 탄생에 일조했다는 것이다. 연예인들과 같이 온라인상에 공개된 영상이나 사진의 수가 많은 인물은 딥페이크 영상 합성이 용이했다. 트위터와 같은 SNS에서도 이러한 딥페이크 포르노 영상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룹 모모랜드의 낸시는 합성 사진으로 피해를 받은 사실이 있다. 이에 대해 지난 11일 MLD 엔터테인먼트는 사진 유포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혔다. 소속사는 “낸시는 도촬 및 합성 사진의 피해자로, 우선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사람”이라며 "불법 촬영자와 최초 유포자를 포함해 이를 유포하는 모든 이들을 상대로 강력한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낸시가 현재 심적으로 큰 고통을 받고 있다”며 “더 이상 악의적인 게시물로 아티스트를 가해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라며 호소했다.

 

알페스와 딥페이크 처벌은?

현재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는 처벌 대상을 ‘촬영물과 영상물’로 규정하고 있어 만화나 소설로 유통되는 '알페스'는 이에 해당하지 않거나, 모호한 상황이다. 또한, 미성년자 아이돌을 대상으로 만든 알페스를 상업적으로 배포했을 경우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이나 아동복지법상 아동에 대한 성희롱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하지만,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은 활자 매체를 규제 대상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세부적인 법 개정이 필요하다.

 

그룹 아이즈원의 멤버 김민주가 소속되어 있는 얼반웍스 엔터테인먼트에서 악성 성희롱 게시글 등에 대해 법적 조취를 취한다. 출처: 얼반웍스 엔터테인먼트
얼반웍스 엔터테인먼트에서 악성 성희롱 게시글 등에 대해 법적 조취를 취한다. /출처: 얼반웍스 엔터테인먼트

알페스의 경우 창작자가 수사망을 피하려고 연예인의 이름을 교묘하게 작성해 특정 피해자를 지정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딥페이크는 실존 연예인의 신체 부위를 사용함에 따라 피해자가 명확히 드러난다. 창작자가 딥페이크 영상물 등의 제작, 반포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의 공포안이 지난해 3월 17일 의결돼 6월 25일부터 시행됐다. 딥페이크 영상물을 제작, 반포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또한, 영리를 목적으로 제작한 경우는 7년 이하의 징역으로 가중 처벌된다. 일각에서는 딥페이크 영상 소지자 및 이용자에게도 처벌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특례법을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연예인의 인권과 존엄성은 어디?

연예인, 운동선수 등은 ‘공인’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들에 대한 법적 보호 권리는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알페스’는 여러 법률에 해당하지만, 하나의 ‘유머 코드’로서 방송에서 대놓고 사용된 적이 많다. 이러한 점은 사람들이 ‘알페스’문제에 대해, 연예인의 인권에 대해 얼마나 무뎌져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알페스’ 문제가 남자 연예인으로 특정되면서, 이에 반하듯 ‘딥페이크’ 문제가 여자 연예인으로 특정됐다. 하지만, 이러한 알페스와 딥페이크 문화는 젠더 갈등 문제가 아니라 사건 자체에 초점을 맞춰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여자 연예인 알페스도 트위터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으며, 남자 연예인의 딥페이크 문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알페스'와 '딥페이크' 모두 실존 인물의 인권과 존엄성을 훼손하는 심각한 문제이다. '문화'라는 틀 안에서 벗어나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물론 팬들 스스로도 올바른 '팬덤 문화'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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