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시트콤, 부활 꿈꿀 수 있을까?
사라진 시트콤, 부활 꿈꿀 수 있을까?
  • 조세령 기자
  • 승인 2021.01.22 1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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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전성기 이후 추락세

제작 환경 허점이 제작진∙작가 이탈 불러와

‘예능형 드라마’처럼 시트콤 장점을 가져가려는 시도 등장

‘순풍 산부인과’ 미달이 방학숙제편 화면 캡쳐 / 출처: SBS NOW 유튜브
‘순풍 산부인과’ 미달이 방학숙제편 화면 캡쳐 / 출처: SBS NOW 유튜브

 

[한국연예스포츠신문] 조세령 기자= “스토리는 내가 짤 거고 글씨는 누가 쓸래?” SBS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 ‘미달이 방학숙제 편’에 등장한 박미선의 대사는 “월급은 내가 받을게 출근은 누가 할래?” 처럼 웃음을 자아내는 각종 ‘짤’로 재탄생했다. 해당 영상은 ‘SBS NOW’ 유튜브 계정에서 무려 499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저녁시간마다 시트콤을 기다리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댓글도 보였다.

찬란했던 전성기와 추억을 향유하는 오늘을 지나, 시트콤은 새로운 부활에 성공할 수 있을까.

 

시청률 20%에서 1%대로, 하락세를 그리다

 

(왼쪽) 지붕뚫고 하이킥/ 출처: MBC(오른쪽) 순풍 산부인과/ 출처: SBS
(좌) 지붕뚫고 하이킥/ 출처: MBC
(우) 순풍 산부인과/ 출처: SBS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시트콤은 시청률 보증 수표이자 신인 연기자 발굴 창구였다. SBS ‘순풍 산부인과’는 1998년부터 2년동안 총 682부작을 방영하며 최고 시청률 30%대를 기록했다. 비슷한 시기에 MBC에서 방영한 청춘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도 36%대 시청률을 돌파한 적이 있었다.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최장수 시트콤의 역사를 세운 ‘논스톱 시리즈’는 조인성, 장나라, 현빈, 이승기 등 톱스타를 배출하며 성공한 신인이 되려면 논스톱을 거쳐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매 회마다 새로운 에피소드와 개성 강한 캐릭터로 승부하던 시트콤은 지상파에서 차츰 자취를 감추었다. ‘순풍 산부인과’, ‘웬만해서는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등으로 입지를 굳힌 김병욱 PD의 ‘하이킥 시리즈’가 대중의 인기를 끌었지만 ‘반짝 회복’에 그쳤다. 2012년 MBC ‘엄마가 뭐길래’는 시청률 저하로 조기종영을 택했고, 2013년 KBS2 ‘일말의 순정’을 끝으로 지상파 시트콤은 장기 휴업 상태에 들어갔다.  tvN에서 ‘감자별 2013QR3’을 제작했으나 이 또한 1%대라는 맥없는 시청률로 무너지고 말았다. 주 4일 편성, 총 120부작으로 ‘정통 시트콤’의 위상을 바로잡기 위한 목적으로 등장했지만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시트콤은 어딘가 거대한 염증을 안고 몰락해가고 있었다.

 

꼬여버린 제작 환경에 악순환 반복

방송사 입장에서 시트콤은 ‘가성비 상품’이었다. 1993년 <오박사네 사람들>을 시작으로 ‘시트콤’은 일반 드라마 제작비 4분의 1에 해당하는 비용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장르가 됐다. 고정된 세트장에서 촬영하는 분량이 많았고 신인 배우 위주로 캐스팅을 진행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면에는 열악한 제작 환경이 있었다. ‘주 5일 방송’이 원칙이었던 한국 시트콤 문화에서, 제작진은 날마다 새로운 에피소드를 기획하고 빠듯한 촬영 일정을 소화하는 높은 노동 강도를 견뎌야 했다. 게다가 방송사의 노동 환경 개선을 목적으로 도입된 ‘주 52시간 근무제’는 시트콤 계에 부담으로 다가왔다. 노동 시간은 줄었지만 제작 시스템에는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제작비 차원에서 추가 인력 고용은 감당하기 어려웠기에 결국 기존 인원을 유지하면서 방송 퀄리티는 낮아지는 난관을 겪었다. 방송 관계자 L 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광고 수입으로 제작비를 채워야 하는데 시청률이 낮아지면서 간접 광고 투자도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고 말했다. 

 

드라마와 예능 사이에서 애매한 정체성

연기대상이 아닌 예능 시상식에 시트콤을 포함하면서 시트콤의 정체성은 모호해졌다. 시트콤은 일반 드라마보다 코믹성이 강한 작품이기에 예능에 가까운 장르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시트콤으로 기획력과 필력을 인정받은 작가진이 더 이상 해당 생태계에 머무르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트콤은 신인 작가의 등용문 역할 정도밖에 하지 못한 채 기피되는 장르로 전락했다. 장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시트콤을 하나의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 때문에 작가들도 굳이 시트콤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라며 “정말 괜찮은 작가들이 많이 모여서 작업을 해야 좋은 작품이 나오는데 이미 많이 빠져나간 상황이다”라고 덧붙였다.

특정 작가진의 역량에 의존하던 시트콤 특성상 제작 생태계는 무너졌다. 한 지상파 방송사 피디는 “시트콤에 특화된 작가나 피디가 별로 없었고, 누가 만드느냐에 따라 시트콤의 인기가 널뛰기했다”고 말했다. ‘웬만해서는 그들을 막을 수 없다’, ‘거침없이 하이킥’ 등을 집필한 송재정 작가는 ‘나인’,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등 드라마 집필에 힘쓰고 있다. 즉, 제작 환경이 상대적으로 편하고 작가로서 명예가 있는 드라마 분야로 작가 이탈이 일어나며 웃음 코드와 완성도를 놓친 시트콤은 매력을 잃어갔다.

 

여전히 시트콤을 찾아보는 이유

(왼쪽) ‘순풍 산부인과’ 재생 목록 캡쳐 / 출처: SBS NOW 유튜브(오른쪽) ‘지붕뚫고 하이킥’ 재생 목록 캡쳐 / 출처: KBS 오분순삭 유튜브
(좌) ‘순풍 산부인과’ 재생 목록 캡쳐 / 출처: SBS NOW 유튜브
(우) ‘지붕뚫고 하이킥’ 재생 목록 캡쳐 / 출처: KBS 오분순삭 유튜브

시트콤 제작은 공백기에 들어갔지만 시청자들은 추억상자에서 클립을 꺼내어 보기 시작했다. 10대들은 20년 전의 ‘미달이’를 보며 공감하고, 2030은 가볍게 웃음을 터트릴 영상으로 다시금 찾아보고 있는 것이다. 방송사에서도 돌아온 ‘탑골 트렌드’에 발맞춰 센스 있는 자막과 함께 옛 영상을 업로드 하기 시작했다. MBC는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하이킥 시리즈’를 올리던 ‘오분순삭’ 코너가 인기를 끌자 2019년 10월 부로 독립 채널을 개설했다. 오분순삭 담당자 김영규 디지털랩장은 한 인터뷰에서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을 하면 동시 접속자가 4000명 가까이 된다”며 “’지붕 뚫고 하이킥’은 최근 누적 조회 수가 1억 8000만뷰를 넘길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답했다.

시트콤은 웹툰, 웹드라마 등 짧은 콘텐츠를 소비하는 ‘스낵 컬쳐’에 적합하다. 편집 영상으로는 10분, 전체 영상도 30분 정도 분량이며 각 회마다 독립된 에피소드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흐름을 놓칠 걱정도 없어서 진입장벽이 낮다. SBS NOW 담당자 이슬기 차장은 “시청자와 쌍방으로 소통하며 인기가 많은 에피소드를 선정해 올리고 있다. ‘몇 회 에피소드 올려주세요’ 등 구체적인 요구를 올려놓는 시청자가 많다”고 말했다.

누구나 공감하기 쉬운 소재와 가끔은 과장된 연출에서 느껴지는 ‘사이다’ 요소 또한 시트콤의 묘미이다. 특히나 ‘가족형 시트콤’은 세대를 어우르는 다양한 캐릭터와 함께 일상에 있을 법한 갈등 요소나 웃음 포인트로 인기를 끌었다. 대학생 K씨는 “‘하이킥!짧은다리의 역습’에서 박하선 캐릭터가 갑자기 흑화하는 에피소드는 몇 번을 봐도 재밌다”고 말했다. 심각한 상황도 흔히 말하는 ‘병맛’으로 풀어내는 방식은 여전히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재미 요소인 것이다.

 

대안으로 등장한 ‘예능형 드라마’

'응답하라 1997' 포스터 / 출처:tvN
'응답하라 1997' 포스터 / 출처:tvN

한편 케이블에서는 '예능형 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가 개척됐다. 예능 PD와 작가가 함께한 것이다. 주 2회 편성 등 드라마와 같은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시트콤의 코믹한 분위기 끌어가는 독특한 만남이었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예능형 드라마'는 시트콤의 버전업 형태라는 평가도 받았다.  예능형 드라마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의 ‘응답하라 1997’이 인기를 끌자, ‘아홉수 소년’, ‘식샤를 합시다’, ‘으라차차 와이키키’ 등 다양한 작품이 등장했다. 케이블 방송사에서 여러 성공 사례가 등장하자 지상파도 예능형 드라마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MBC ‘그녀는 예뻤다’, KBS ‘프로듀사’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방송 관계자들은 “안전한 흥행이 보장된 장르는 아니지만, 시트콤 자체만으로 경쟁력을 갖기 힘든 상황에서 시트콤의 진화한 콘텐츠로 경쟁력이 있다”고 예능형 드라마의 미래를 전망했다. 물론 저조한 시청률로 빛을 발하지 못한 작품도 있었기에 정통 드라마와 시트콤 사이에서 흐지부지될 장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시트콤의 미래는 열린 결말

전문가들은 방송사의 지원과 협조가 없다면 정통 시트콤의 부활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한다. 시트콤 계에 한 획을 그었던 김병욱 PD 마저 “일일 시트콤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기에 미래가 더욱 아득하다. ‘하이킥 시리즈’를 담당한 박순태 총괄 프로듀서는 “미국 시트콤 ‘프렌즈’가 10년동안 롱런할 수 있었던 이유도 충분한 투자와 개런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트콤만의 특화된 제작환경과 투자 구조를 구축해 나간다면 해당 장르에 뛰어들 제작진이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훗날 ‘예능형 드라마’가 영원히 사라져버린 시트콤의 대체재로 언급될지, 시트콤이 새로운 신화를 써 내려갈지 갈림길 앞에 놓여있는 상황이다. 가벼운 웃음 뒤에 통쾌한 풍자요소,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 특별함을 그렸던 시트콤만의 반전 매력을 다시 만나게 될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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