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어, 언어파괴와 새로운 문화 사이
신조어, 언어파괴와 새로운 문화 사이
  • 안지윤 기자
  • 승인 2021.01.28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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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새롭게 등장하지만 언어파괴 논란을 빗는 신조어

새로운 문화로 인정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연예스포츠신문] 안지윤 기자 = '슬세권', '이생망', '롬곡옾높', '억텐', '삼귀다'. 지금 제시된 단어들의 뜻은 무엇일까.

'슬세권'은 '슬리퍼를 신고 다녀도 되는 곳'을 뜻하며 '슬리퍼'와 '역세권'을 합친 말이다. '이생망'은 '이번 생은 망했다'의 줄임말이다. '롬곡옾높'은 '폭풍눈물'을 180도 돌린 것으로 몹시 슬픈 상황을 표현한다. '억텐'은 '억지 텐션'의 줄임말이다. '억지로 분위기를 잡거나 맞추려 하는 것, 또는 상태'를 뜻한다. '삼귀다'는 '사귀다'의 전단계인 썸타는 단계를 표현한 것으로 동음이의어인 숫자 4를 활용하여 그전 숫자인 3으로 표현한 것이다.

언급된 단어 중 한눈에 보자마자 뜻을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 몇 개나 될까. 위에 제시된 단어들은 그나마 뜻을 짐작하기 쉬운 축에 속한다. 10대들 사이에서 유행한다고 하여 '급식체'라고 불리지만 최근엔 MZ 세대를 아우르는 신조어로 자리 잡아 많이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쉽게 뜻을 이해하기 어려운 신조어가 많아 세대 간의 소통 단절을 야기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며 언어유희일 뿐이라는 주장과 매번 대립하고 있다.

 

신조어 등장 배경, PC 통신부터 시작

신조어는 1990년대 PC 통신이 시작되며 나타났다. 초기 인터넷 통신 환경은 데이터 전송 속도가 떨어지고 통신 요금 부과 체계가 시간에 비례했다. PC를 전화선과 연결하여 사용하던 탓에 요금 걱정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특히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등 대화방 같은 실시간 채팅이 큰 부분을 차지했다. 때문에 빠르게 자신의 의사 전달을 위한 줄임말과 초성 사용이 시작된 것이다. '방가, ㅇㅇ, 하이루, 강퇴' 등이 이때 탄생한 말이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등장했던 초기 PC통신의 모습./출처 : tvN D ENT 영상 클립 캡처본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등장했던 초기 PC통신의 모습
/출처 : tvN D ENT 영상 클립 캡처본

2000년대로 들어선 후로 온라인 게임이 유행하며 다양하고 활용도 높은 신조어가 등장했다. 2G 휴대전화 시절 일정 글자 수를 넘어가면 MMS로 전환되며 문자요금이 더 비싸지기도 했다. 정해진 용량에 맞추기 위해 더욱 간결한 줄임말도 등장했다. 그리고 2010년,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고 점차 보급률이 증가하면서 신조어는 더욱 활발하게 생성, 사용되었다. 특히, 10~20대들이 중심이 되었다. 카카오톡과 SNS 등 빠른 실시간 소통과 또래들 간의 유대감 형성에 신조어가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야민정음?언어파괴?

'요즘 애들 말하는 걸 보면 세종대왕님이 무덤에서 우실거다' 매년 한글날마다 들리는 말이다. 공식적인 표준어가 아닌 것, 기존의 글자 체제에서 벗어난 점에서는 '파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신조어 사용으로 인한 경제적 이득, 유대감 형성, 새로운 문화 창출이라는 장점도 있다.  지난 2019년 소강춘 국립국어원 원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사실 국어원장의 입장에서는 쓰면 안 된다고 얘기해야 하지만, 언어학자의 입장은 다르다"라고 밝혔다. "이러한 현상(신조어 생산을 위한 축약, 붙여쓰기 등)은 한글 고유의 특징과 더불어 디지털 문화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달한 상황에서 발생한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라고 본다"라고 설명했다. 언어 자체로만 본다면 파괴이지만 이를 사람들이 활용하는 측면에선 문화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훈민정음의 해례 중 단어의 표기례. 중세국어에서 90단어의 예를 들어, 그 표기법을 보였다. 국보 제 70호로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있다./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훈민정음의 해례 중 단어의 표기례. 중세국어에서 90단어의 예를 들어, 그 표기법을 보였다. 국보 제 70호로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글은 유연한 문자다. 사람의 구강을 보고 만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보고 만든 문자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말하는 모든 것이 한글로 표현이 가능하다. 영어나 프랑스어가 어절을 모두 풀어쓰는 것과는 달리 한글은 초, 중 ,종성이 존재하고 이를 함께 묶어서 표기하는 모아쓰기의 형태이다. 언제든지 풀어쓸 수도, 모아쓸 수도 있다. 얼마든지 자유롭게 언어를 활용할 수 있는 일종의 '놀이'가 되기에 충분한 환경이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사람들의 생각, 일상, 문화에 따라 언어도 바뀌기 마련이다. 중세 국어와 오늘날의 국어가 다른 것처럼 언어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때문에 신조어 생성과 활용을 단순히 '언어 보존'과 '언어파괴'의 문제로 바라보기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과거에도 존재했던, 해외에도 존재하는 신조어

신조어가 현대에 와서 생겨난 것일까? 아니다. 과거에도 '야민정음'이라고 볼 수 있을 만한 한글 활용이 존재했다. 먼저 예를 들어보자. 캐나다 출신 가수 저스틴 비버를 우리나라 사람들은 '뜨또'라 부르기도 한다. 그가 올렸던 저스틴 비버 한글 문신을 눕혀 읽으며 생긴 일이었다.  과거 조선시대에도 이러한 방법으로 글자를 활용했었다.

한글 창제 직후 한글 책 발간을 위한 한글 활자 제작이 진행되었다. 그 가운데 돌려보아서 똑같이 생긴 문자들은 재활용을 했다. 경제적 이유에서였다. 예를 들어 '운'이라는 활자를 하나만 만들었는데 한 면에 두 번 나왔다. 이럴 경우 '공' 활자를 180도 돌리면 '운'이 된다. 그렇게 찍어내면 감쪽같이 '운'이 인쇄되는 것이다. 

해외에도 줄임말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익숙하다. 접하기 쉬웠던 것으로 'OMG(Oh my god)', 'ASAP(As soon as possible)' 등이 있다. 이러한 영어 표현을 '슬랭 영어'라고 말한다. 'Wayd'는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 바로 'What are you doing?'을 줄인 말이다. 한글을 사용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한글 신조어보다 더 어렵겠지만 원어민들은 바로 뜻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존재했던 신조어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다양하다. 20대 C 씨는 신조어를 '언어파괴'로 보는 것에 회의적인 의견이었다. "신조어는 새로운 문화다. 우리가 사는 순간이 역사가 되는 것처럼 언어 역시 문화로 남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신조어로 인해 기존 표준 국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닌데 왜 파괴로 치부하는지 모르겠다. 원래의 것을 알고 유지하면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50대 A 씨는 신조어의 장점을 인정한다고 하면서도 '언어파괴'에 가깝다고 말했다. "신조어를 처음 봤을 때 재밌고 참신하긴 했다. 자신들만의 문화를 만드는 것도 좋다. 하지만 의사소통 수단이라는 언어의 본질적인 기능을 생각해 보았을 때, 신조어는 세대 간의 소통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라며 신조어 문화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댕댕이('멍멍이'의 신조어), 커여워('귀여워'의 신조어) 같은 정도는 참신하고 재밌는 것 같다"라고 말하며 도를 지나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언어파괴'를 넘어서 새로운 문화로

신조어는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언어문화로 자리 잡았다. 실시간 소통 속 편리함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유용하게 쓰인다. 신세대, 특히 MZ세대 내의 유대감 확립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매 세대마다 신조어는 있었다. '웬열','방가방가','하이루' 등이 그러하다. 그럼에도 MZ세대의 신조어가 돋보이는 이유는 스마트폰 활용을 통한 빠른 확산세와 타 집단이 이해하기 어려운 보안성 때문이다. 이 때문에 소통 단절 주장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활용도가 높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활용도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에게 그 단어가 공감을 얻고 있다는 뜻이다. 기존의 언어 자체를 파괴하여 새로운 언어 체계를 만드는 것이 아닌, 이를 재구성하기 위해 가미된 독창성과 기발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엄청난 신조어라며, 이런 말을 쓰면 신세대라고 불리던 말들이 있다. '대박', '품절남-품절녀', '돌직구', '심쿵' 등 이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말이 되었다. 그에 반해 잠깐 쓰였다 사라진 말들도 있다. 이제는 쓰지 않는 '뷁'이나 '안습'이 그런 경우다. 신조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언어가 시대에 맞는 새로운 흐름을 타고 있는 만큼 어떤 언어든 새롭게 등장하고 사라지는 경우가 반복된다. 신조어란 그 시대의 문화를 담고 있는 것이다. 언어의 의사소통 기능과 사회문화적 측면을 모두 고려하여 소통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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