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불러오는 어린이들의 혐오표현 사용
차별 불러오는 어린이들의 혐오표현 사용
  • 안지윤 기자
  • 승인 2021.02.17 0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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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에 관심 많은 어린이, 차별하는 어른

우리 사회 속 만연해있는 혐오표현

부모 세대의 특권 의식이 자리잡은 결과

서로의 다양성 존중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연예스포츠신문] 안지윤 기자 = '월거지', '엘사', '개근거지'가 뜻하는 말은 무엇일까. '월거지'는 '월세 거리'라는 뜻으로 월세 거주자들에 대한 비하 표현이다. '엘사'는 '엘에이치( LH 공공임대) 사는 애'라는 뜻으로 역시나 비하 표현이다. 최근 새롭게 등장한 표현인 '개근거지'는 가족 여행이나 해외여행으로 인한 결석 없이 학교를 빠지지 않고 나오는 학생들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2019년 한 커뮤니티에서 초등학생들이 위와 같은 단어를 사용하여 편을 가른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재산과 주거환경이 더 이상 어른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는 사례였다. 해당 글이 일파만파 퍼지며 많은 누리꾼들이 충격에 휩싸였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위와 같은 혐오표현은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새로운 표현이 생겨났다. '개근거지'가 바로 그러한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월거지', '전거지', '이백충', '기생수'를 아시나요?

앞서 설명했던 단어들 외에도 다양한 혐오표현이 온라인 상에 퍼져있다. '전거지'는 '월거지'의 뜻을 알면 쉽게 유추해낼 수 있다. '전세 거지'라는 뜻이다. '이백충'은 '200만원+벌레 충(충)'을 합친 말로 부모의 월급이 200만원 대인 아이를 비하하는 표현이다. 더 나아가 '삼백충', '사백충'까지도 생겨났다.

송파구 잠실동에 거주하는 A 군(13세)은 위와 같은 혐오 표현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월거지'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나는 직접 사용해본 적은 없지만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백충', '삼백충'이 무슨 뜻인지도 알고 있냐는 질문에 "본 적은 없지만 뜻은 알 것 같다. 월급 200만원 받는 사람이라는 뜻 아닌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어떤 뜻인지 다 알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기사 내용과 무관한 사진 / 출처 : 픽사베이
기사 내용과 무관한 사진 / 출처 : 픽사베이

학원 보조 강사로 약 1년 여 간 근무했던 A 씨(24세)는 아무렇지 않게 집안 얘기를 하는 아이들에게 당황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의 하원을 돕던 날, 빌라 골목 근처를 지나가며 있었던 일이다. '최근에 이사를 했는데 전세로 이사를 갔다'라고 말하며 좋아하던 아이는 '원래는 월세였는데 전세로 가서, 나도 이제 전셋집에 살아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그런 아이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줘야할지 몰랐다는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의 초등학생들은 재산에 관심이 많다. '수저'가 곧 자랑거리가 되기도, 창피한 일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원인은 무엇일까?

혐오표현은 현실에서보다 온라인에서 더욱 많이 쓰인다. 포털사이트에서 댓글을 검열하고 댓글창을 막았다고 해도 아무렇지 않게 사용된다. 초등학생들의 인터넷 이용량이 늘면서  SNS와 커뮤니티 노출도도 증가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실시한 '인터넷이용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3~9세에 아동들이 '인터넷을 이용한다'에 응답한 비율이▶2013년 80.1% ▶2014년 78.8% ▶2015년 79.8% ▶2016년 82.9% ▶2017년 83.9% ▶2018년 87.8% ▶2019년 91.2% 로 상승세를 보였다. 10대들의 인터넷 이용률은 꾸준히 99.7~9%를 기록했다. 

 

2019 10대 청소년 미디어 이용 조사. 10대들의 서비스/ 플랫폼 이용 빈도 조사 결과. / 출처 : 한국언론진흥재단 

그만큼 각종 커뮤니티에 대한 노출도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포털사이트 댓글 시스템이 검열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는 것에 반해 커뮤니티 글과 댓글은 검열 없이 적나라하게 표현되는 것이 대다수이다. 별도의 로그인 과정을 거치지 않는 경우도 많아 신고도 어렵다. 자정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월급 200만원은 적다는 것, 월세가 전세나 매매보다 경제적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 LH 공공임대에 사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은 어른들로부터 배운 것이다. 공공임대 건물과 놀이터를 구분한다거나, 사이에 담벼락을 짓는다거나, 임대가구 동의 외벽은 일반 동과는 다르게 색칠한다거나 하는 차별은 이미 많이 알려졌다. 

2020년 6월 18일 한 세종시 아파트 승강기에 붙은 공고문이다. 아파트입주자대표회가 게시한 '2021년 ** 초등학교 학군조정 문제'라는 글 아래에 'LH 임대아파트가 포함된 학군으로 분류되어 아파트 이미지 저하가 우려됨'이라는 노골적 표현이 담겨있다. 주민 모두가 사용하는 승강기에 붙어있는 이 공고문은 SNS와 지역 주민들을 통해 일파만파 퍼졌고 이에 입주자대표회장은 사과문을 올리고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현실적인 상황 설명으로 직설적인 표현을 드려 죄송합니다'라는 문구가 덧붙여있지만 결국 임대아파트 주민들에 대한 차별을 드러내고 있다. 생활 공간인 아파트 승강기, 집, 가족들을 통해 아이들은 차별을 배우고, 이를 넘어 혐오까지 배우게 되는 것이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아이들의 혐오표현 사용을 "부모 세대의 특권 의식이 아이들에게 반영된 결과"라고 밝혔다. "타인을 평가, 차별하며 사회적 박탈감을 보상받는 모습이 아이들에게도 전달된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를 '반면교사(反面敎師 : 남의 허물이나 언행을 교훈으로 삼다)' 삼기 때문에 부모의 역할과 교육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설명하며 부모의 역할에 무게를 실었다. 

단어 자체에 차별과 혐오의 뜻이 내포되어 있는 만큼 혐오표현 사용은 아이들의 관계 속 따돌림의 시작이 되고 있다. 2019년 화제가 되었던 마포구 한 초등학교의 사회복무요원의 글에서 알 수 있다. 이름이 아닌 '이백충', '삼백충'으로 부르며 편을 가르는 모습에 많은 누리꾼들을 충격적이라는 반응이었다. SNS나 특정 상황에서 사용되는 것이 아닌 일상 생활에 이미 녹아든 혐오표현은 소수자에 대한 지속적인 배제와 차별로 이어진다.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계급'으로 이어지며 불평등이라는 결과도 드러나게 된다. 

 

잘못된 혐오표현, 잘못된 가치관으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가난과 차별에 대한 배제를 지양하도록 가정과 사회의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부모와 보호자, 어른들부터 혐오표현을 쓰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 굳이 혐오표현이 아니더라도 아이 앞에서 차별적 발언은 금지해야하며 사회와 기업 역시 약자나 소수자를 배려하지 않는 분위기를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출처 : LH 한국토지주택공사 홈페이지
출처 : LH 한국토지주택공사 홈페이지

혹여 아이가 혐오표현을 사용했을 경우 무조건 혼내기보단 왜 사용하면 안 되는지 알려주어야 한다. 아이들이 접하기 쉬운 혐오표현을 먼저 알아보는 것이 좋다. 예시로 '엘사(LH 임대주택 거주자 비하표현)'와 같은 경우 동명의 캐릭터가 있기 때문에 쉽게 알아차리기 힘들 수 있다. 장난스럽게 사용할 뜻이 아님을 명확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연세대 이승현 박사는 한 강연을 통해 아동을 '변화의 최정상'이라고 표현했다. 성장하는 아동은 고정된 편견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적고, 변화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덧붙여 "혐오표현에 대한 직접적인 노출을 통한 교육보다는, 구별하는 태도를 지양하고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할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라고 설명했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변화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만큼 차별과 다름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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