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시작, 바디 포지티브
몸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시작, 바디 포지티브
  • 조세령 기자
  • 승인 2021.03.24 1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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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는 ‘자기 몸 긍정주의’

패션 업계도 편의성과 다양성을 강조하기 시작

획일적인 기준 탈피하려는 노력 필요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연예스포츠신문] 조세령 기자 = 미국 뉴욕타임즈의 유명 칼럼니스트 윌리엄 쉐파이어(William Saphire)는 2000년 8월 처음으로 ‘루키즘(Lookism)’이라는 용어를 언급했다. 루키즘은 우리말로 ‘외모 지상주의’를 뜻하며 외모가 새로운 차별 요소로 부각되기 시작한 사회 풍조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로부터 2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우리는 여전히 암묵적인 미의 기준에 도달하려고 애쓰는 강박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지난해 7월 한국 여성정책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내 외모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신경을 쓰는 편이다’는 문항에 남성 55.7%와 여성 75.7%가 동의했고, ‘우리 사회에는 바람직한 외모에 대한 기준이 있다’는 문항에는 남성 66.4%와 여성 70.7%가 동의했다.

이처럼 외모에 대한 고민과 강박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외모 지상주의’에 반격을 가할 색다른 용어가 등장했다. 바로 ‘바디 포지티브’ 또는 ‘자기 몸 긍정주의’라고 불리는 개념으로, 신체 사이즈, 나이, 성별, 피부색 등에 상관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고 가꾸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바디 포지티브 운동은 자신의 몸에 대한 강박이 더 이상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논의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하다.

 

꾸며진 몸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편안함’을 위한 패션

바디 포지티브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한 배경에는 2017년 미국 패션 업계가 선도한 새로운 흐름의 역할이 컸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 흑인 퀴어 커뮤니티가 주도한 ‘지방 수용 운동 (Fat Acceptance Movement)’을 시작으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받고자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꾸준히 있어왔다. 이처럼 미국 사회와 패션 업계는 바디 포지티브를 짧은 트렌드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여기며 새로운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노력의 선두주자로 나섰다.

이전의 패션이 사회적 기준에 부합하는 이들을 위한 상품을 주로 내놓았다면 이제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주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패션 업계 중에서도 특히 속옷 업계는 신체적 다양성과 편의성을 갖춘 상품 출시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여성성과 섹시함을 강조하는 ‘빅토리아 시크릿’의 하락세는 보정용 속옷 대신 편안하고 몸에 맞는 속옷을 찾는 소비자들의 니즈를 보여준다. 빅토리아 시크릿은 속옷이 더 이상 부끄러운 제품이 아니라 패션이라는 인식 개선에 큰 몫을 한 브랜드이지만 바디 포지티브 트렌드를 발빠르게 따라가지 못한 결과, 지난 2019년 20년 가까이 진행한 란제리 패션쇼를 전면 중단하고 본사 직원의 약 15%를 감원하는 등 추락을 면하지 못했다.

 

속옷 브랜드 ‘에어리’를 대표하는 일반 사이즈 모델 / 출처: 에어리 공식 홈페이지
속옷 브랜드 ‘에어리’를 대표하는 일반 사이즈 모델 / 출처: 에어리 공식 홈페이지

반면 미국 속옷 브랜드 ‘에어리(aerie)’는 섹시한 속옷을 입은 8등신 모델을 주로 고용하던 속옷 업계에 대한 반격으로 다양한 체형을 지닌 일반인 모델을 내세우면서 바디 포지티브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2014년 ‘진짜 몸매’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화보와 광고 사진에 보정 처리를 하지 않는 등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강조하며 여성에게 자신감을 주고자 하는 신념을 담았다. 에어리는 해당 프로젝트를 진행한지 1년 만에 20%의 매출 상승을 기록하며 소비자들의 관심을 입증했다. 나아가 수익의 일부를 전미섭식장애협회(NEDA)에 기부하는 등 거식증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돕는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비비안 ‘Hello, My Fit’ 캠페인 / 출처: 비비안 캠페인 영상 캡쳐
비비안 ‘Hello, My Fit’ 캠페인 / 출처: 비비안 캠페인 영상 캡쳐

국내 속옷 업계도 비슷한 행보를 보인다. 전체 제품 90%가 와이어리스 브라로 구성된 ‘엘라코닉’은 2017년 8월 오픈 이래로 1년 6개월 만에 6배 넘게 급증한 매출을 기록했다. ‘비비안’은 볼륨을 강조하고 ‘워너비 몸매’를 만들어주겠다는 기존 광고에서 변화를 꾀했다. 2016년 진행한 광고 캠페인에서는 ‘체형에 관계없이 자신만의 아름다운 핏을 찾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추구해야 할 멋진 몸매라는 기준이 존재하지 않음을 강조했다. 강지영 비비안 디자인 기획부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속옷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바디 포지티브는 여성의 선택권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나의 필요에 맞게 브라를 착용하지 않는 것도 포함해서 형태나 소재를 고를 권리가 본인에게 있다”고 말하며 다양한 제품군을 확대해 갈 예정임을 밝혔다.

 

다양한 사람들을 대표할 수 있는 모델의 등장

바디 포지티브의 영향으로 패션 브랜드가 타겟으로 하는 고객의 연령대, 사이즈, 인종 등이 다양해지자 자연스럽게 런웨이에 오를 수 있는 모델 체형의 폭도 늘어났다. 2017년 런던 패션위크 시몬느 로차의 컬렉션에서는 50대 이상의 시니어 모델들이 피날레를 장식하면서 이들만의 색다른 분위기로 패션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팝스타 리한나가 런칭한 ‘새비지X펜티(Savage×Fenty)’ 속옷 브랜드는 30AA부터 44DD까지 모든 브래지어 사이즈를 포함한 모델과 리한나의 뮤즈로 알려진 모델 슬릭 우즈가 임신한 몸으로 런웨이에 등장했다. 국내 브랜드 에잇세컨즈에서도 2019년 6월 첫 일반인 모델 콘테스트인 ‘에잇 바이 미 (#8SXME, 8seconds X ME)’를 진행하며 다양한 신체 사이즈를 보유한 사람들이 모델 활동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당시 인스타그램 ‘좋아요’ 개수를 기반으로 선정된 일반인 모델 1위 자리는 스페인 국적의 모델 지망생이 차지했다.

기성복 표준 사이즈를 넘는 모델을 뜻하는 ‘플러스 사이즈’나 주위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보편적 사이즈인 66-77 사이즈를 대표하는 ‘내추럴 사이즈’ 모델들의 활약도 눈에 띈다. 국내 1호 내추럴 사이즈 모델이자 패션 유튜버 ‘치도’로 활동하고 있는 박이슬 씨는 지난 2018년 ‘사이즈 차별 없는 패션쇼’를 열었다. 패션쇼에는 사이즈 44부터 100이상 다양한 체형을 지닌 19명의 모델이 등장했다. ‘치도’ 유튜브에는 내추럴 사이즈를 위한 코디 팁부터 식이장애 치료 방법, 외모에 집착하지 않는 팁 등 자신의 내면과 외면을 모두 사랑하고자 하는 그녀의 소신이 다양한 영상 속에 담겨 있다. 박이슬 씨는 ‘62kg 룩북’이라고 과감하게 몸무게를 공개한 영상 제목을 선택한 이유로 “몸무게는 부끄러워할 필요 없는 숫자일뿐더러, 살 빼서 입는 것 말고 지금 당장 입고 싶은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바디 포지티브를 둘러싼 논란

때로는 바디 포지티브라는 개념 자체가 또 하나의 틀이 되어서 남을 평가하는 수단으로 의미가 변질되기도 했다. 애슐리 그레이엄은 영국 보그 잡지 100년 역사상 1호 표지를 장식한 첫 플러스 사이즈 모델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며 당당하게 활동을 이어가는 모습이 SNS에서 그녀를 팔로우하는 사람들에게 용기가 되고는 했는데, 애슐리가 더 이상 플러스 사이즈 모델을 대표할 수 없다는 비난을 받게 된 해프닝이 있었다. 애슐리 그레이엄이 이전보다 슬림해진 몸매로 보그 행사장에 등장하자, ‘더 이상 플러스 사이즈를 대표하지 마라’, ‘바디 포지티브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냐’ 등의 목소리가 이어진 것이다.

애슐리는 지난 2017년 허프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운동 영상을 올리면 악플을 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의 기준에 맞지 않는 몸이라고 해도 난 나 자신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플러스 사이즈기 때문에 건강 관리와 운동에는 관심이 없어야 하고 늘 정해진 몸매만 유지해야 한다는 편견이 담긴 반응에 일침을 가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 본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며 받는 질타가 어떠한 사회적 기준에도 몸을 애써 맞추지 않겠다는 취지인 바디 포지티브 운동에 적합한 반응인지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일각에서는 바디 포지티브가 비만을 방조하는 안일한 생각이라는 비판도 있다. 2019년 영국 런던의 메인 쇼핑거리인 옥스포드 스트릿 매장에 들어선 나이키 레깅스 세트를 입은 ‘플러스 사이즈 마네킹’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플러스 사이즈 마네킹에 언론과 소비자들은 ‘미적 기준을 깨뜨린 용감한 시도’라는 반응과 ‘비만을 미화하는 무책임함’이라는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영국 텔레그래프 저널리스트 타냐 골드는 ‘나이키의 플러스 사이즈 마네킹은 여성들에게 위험한 거짓말을 한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마네킹에 비만과 관련된 형태를 보여주는 것은 위험한 것으로 간주된다”며 “엄청나고 거대한 모집에 지방 덩어리를 달고 있는 그저 비만인 여성”이라고 언급했다.

 

바디 포지티브의 핵심 메시지 놓치지 말아야

바디 포지티브는 결국 어떠한 기준을 세우려고 할 때마다 모순에 빠져들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바디 포지티브에 대한 논의가 플러스 사이즈에 집중되고 있는 것은 여전히 정상 체중이 아닌 몸을 ‘게으르고 자기 관리를 못한다는 징표’로 취급하는 사회 현상을 반영한 것이지, 뚱뚱한 몸을 기준으로 삼거나 ‘옹호’할 목적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건강에 적신호가 생길 정도로 마른 몸을 유지하는 연예인을 보면서 ‘거식증을 조장한다’고 말하는 경우는 적지만 플러스 사이즈를 보면서 ‘비만을 조장한다’고 말하는 것은 바디 포지티브의 핵심 메시지를 간과한 지적이다.

나아가 바디 포지티브 운동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해당 트렌드에 발빠르게 반응하고 이를 주도하는 산업들이 이익을 보고 있는 것은 맞지만 일각에서는 이들이 브랜드 홍보용에만 그치는 캠페인을 진행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일반인 모델 선발대회에서 플러스 사이즈 모델을 선발했던 에잇세컨즈도 ‘S.M,L’ 세 가지 사이즈만 갖춘 제품이 많았고 재고 처리를 이유로 보다 다양한 사이즈를 제작하기에는 수익적인 고민이 크다는 이유를 들었다. 마른 모델만을 지향하던 모델 업계가 거식증을 앓던 모델의 죽음을 직면하고 ‘마른 모델 금지법’을 제정하는 등 모델들의 건강 보호를 위한 헌정을 마련한 것처럼 세상은 다양함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차츰 나아가고 있다. 핵심은 여기에 있다. 어떠한 사이즈를 지닌 사람이, 혹은 어떠한 인종이나 성별이 사회에서 더욱 주목받아야 하는지를 논할 때가 아니라 다양성을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는 문화를 위해 모두가 고민하고 몸에 대한 건강한 논의가 꾸준히 이루어져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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