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장의사, 잊힐 권리 수호와 악용 사이
디지털 장의사, 잊힐 권리 수호와 악용 사이
  • 조세령 기자
  • 승인 2021.04.12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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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디지털 평판 관리 목적으로 의뢰하는 경우가 많아

‘잊힐 권리’와 ‘알 권리’ 사이에서의 충돌 존재

디지털 범죄에 가담하는 사례도 등장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연예스포츠신문] 조세령 기자 = 개인 SNS에 올리는 게시물, 인터넷 뉴스 기사에 남기는 댓글, 쇼핑 기록까지 현대인들은 디지털 공간에 수많은 흔적을 남긴다. 인터넷 공간은 더 이상 가상 공간의 느낌보다는 현실의 연장선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흔적을 남기는 것만큼 관리하는 일도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급속도로 퍼져 나가는 정보를 개인이 혼자서 관리하기란 한계가 있으며 삭제한 기록이라도 다시금 복원될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 개인적으로 정보를 삭제하기에 한계를 느낀 사람들은 ‘디지털 장의사’의 힘을 빌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마치 꼬리표처럼 따라붙어서 사람들을 괴롭히는 게시글이나 공개를 원치 않는 기록을 전담 관리하는 전문가로, 언택트 시대에 가속화된 인터넷 공간에서 중요한 직업으로 자리잡았다.

 

디지털 유산 정리에서 디지털 평판 관리까지

디지털 장의사는 2005년 미국의 온라인 상조회사 ‘라이프인슈어드닷컴’에 시초를 두고 있다. 생전에 300달러라는 가입비를 내면 죽고 나서 회원과 관련된 SNS 게시글, 보안 카드, 공인인증서 등 모든 인터넷 정보를 정리해주는 역할을 주로 담당했다. 즉, 예기치 못한 사고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차마 처리하지 못한 디지털 유산을 정리해주는 개념으로 설명되고는 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8년 연예인 관련 게시글이나 기사에 달린 댓글을 관리하던 업체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대략 30개의 디지털 장의사 전문 업체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에 기원을 둔 업체와 다른 점이라면 고인의 기록을 정리해주는 역할보다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디지털 평판 관리에 힘쓰고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장의사 업체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산타크루즈컴퍼니는 매년 약 6000여건의 의뢰를 받는데 실제로 고인의 데이터를 정리해달라는 요청은 전체의 5% 남짓이라고 한다. 직접 업로드 한 게시물에서부터 리벤지 포르노 (헤어진 연인에게 보복할 목적으로 유포하는 성적인 사진이나 동영상), 불법 촬영 등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된 기록, 기업이나 단체와 관련된 근거 없는 비방 게시물과 허위 사실까지 의뢰 요청 유형은 다양하다.

평균적으로는 게시물 100건당 50만원 정도에서 거래가 이루어지지만 의뢰인이 요청한 게시물이 해외 사이트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 추가적인 시간과 비용이 든다. 당장 현재 유포된 건만 처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추가적으로 올라오는 게시물에 대한 모니터링을 장기간에 걸쳐서 요청하는 경우도 있기에 금액은 천차만별이다. 이처럼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하는 일에 사람들이 힘을 쏟고 있는 이유는 디지털 세상 속 평판이 현실에서도 사람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취업 과정에서 혹여나 디지털 속 기록이 부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디지털 장의사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16년 취업 포털 인크루트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성인 남녀 817명 중 45%는 인터넷 상의 개인 신상 정보 및 기록을 지우고 싶다고 대답했으며 78%는 디지털 장의사 서비스를 이용해보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다. 취업준비생 A씨 (25세)도 “기업에 자기소개서를 제출하는 동안에는 개인 SNS를 모두 비공개 처리해두고는 한다”며 “혹시나 인터넷에 올라간 개인 정보나 사생활이 이미지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잊힐 권리’ 위해서라도 필요한 서비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디지털 장의사의 업무는 ‘잊힐 권리’를 지켜주는 것에 기본을 두고 있다. ‘잊힐 권리’란 2014년 유럽에서부터 등장한 개념으로 자신이 게시한 글에 타인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의미한다. 2010년 스페인 변호사 마리오 곤잘라스는 구글에 자신의 이름을 검색했을 때 ‘1998년 연금을 내지 않아 집이 경매에 처해졌다’는 결과가 나오자 지금 상황과는 맞지 않는 기록이라며 기사와 검색 결과 노출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유럽 연합 사법재판소는 해당 사건을 계기로 ‘개인정보보호지침’에 근거하여 검색 링크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인 잊힐 권리를 법제화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6년부터 ‘인터넷 자기 게시물 접근 배제 요청권’이라고 부리는 잊힐 권리 관련 가이드라인이 도입되었다. 해당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자신이 올린 1차 게시물에 관해서는 ‘잊힐 권리’를 행사하기 쉽지만 재가공 되거나 여러차례 공유된 게시물에 대해서는 행사할 수 없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삭제 요청을 받은 관리자는 블라인드 처리를 통해 타인의 접근을 막거나, 캐시 등을 삭제하면서 검색 목록에서 노출되는 경우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게시글이 의뢰인 본인이 작성한 것인 경우에만 성립 가능한 조건이다. 제3자가 올린 게시물을 지우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을 인정받아야만 잊힐 권리 가이드라인을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장의사는 의뢰인과 사이트 관리자 사이에서 게시물이 삭제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득하는 역할로서, 게시물의 직접적인 삭제 결정은 포털 및 특정 사이트 운영자의 몫이 크다. 그렇기에 디지털 장의사 업체가 사이트 관리자나 사업자에게 게시물 접근 배제 요청을 하더라도 가이드라인에 따라 거절당할 수 있는 잊힐 권리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것이다.

실제로 ‘잊힐 권리’를 주장했음에도 꼬리를 물고 퍼져 나가는 게시글 때문에 피해를 입은 일반인의 사례도 있었다. ‘햄최몇’이라는 짤의 주인공으로 언급되던 당사자는 중학교 3학년 시절 개인 SNS에 셀카를 게시했고 해당 사진이 인터넷 카페에 도용되면서 “햄버거 최대 몇 개까지 가능해요?”라는 조롱 섞인 댓글을 받았다. ‘햄최몇’이라는 용어는 한참동안 온라인 상에서 사용되면서 당사자에게 정신적인 트라우마로 남았다.

최초로 시작된 게시물은 ‘잊힐 권리’ 가이드라인을 통해서 삭제가 가능했지만 다른 사이트로 다시금 유포된 게시물은 삭제 과정에 난관을 겪은 것이었다. 당사자는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지인들이 사이버 수사대에 신고를 해주었으나 효과는 전혀 없었다”, “더 이상 이 일로 저와 주변 사람들이 피해를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는 내용이 담긴 입장문을 게시하기도 했다.

이처럼 누구나 디지털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게시물 때문에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디지털 장의사 업체는 의뢰인의 ‘잊힐 권리’ 수호를 목표로 한다. 탑로직 박용선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잊힐 권리가 필요한 피해자들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직접 나서서 게시물 등을 삭제해주며 해당 권리를 실현시켜주는 가장 대표적인 직업군이 디지털 장의사”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9월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표한 ‘잊힐 권리 법제화에 대한 검토’ 자료에 의하면 아직까지 명시적인 법안으로 보호되고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개인정보보호법’과 ‘정보통신만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 개별법상 규정으로 일정 부분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으며 제3자가 유포한 게시물도 조정 대상에 포함하는 등 개선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디지털 장의사의 역할과 함께 잊힐 권리에 대한 논의도 사회적으로 중요한 무게를 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알 권리’ 침해, 디지털 범죄와의 결탁 등… 악용 사례도 존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일각에서는 사람들이 알아야만 하는 정보까지 디지털 장의사 업체를 통해서 일방적인 삭제가 가능하게 된다면 ‘알 권리’와 더불어 사회적 감시 기능이 손실된다는 우려도 이어진다. 디지털 장의사 측에서 자율적으로 의뢰인의 요청을 접수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규정이 없는 상황이며 잊힐 권리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부족하다고 할지라도 기존에 존재하는 법으로도 삭제할 수 있는 부분이 충분하다는 의견이다.  

디지털 장의사 업체가 피해자의 잊힐 권리를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범죄에 가담하는 등 악용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잇따른다. 실제로 지난해 디지털 성범죄에 경종을 울렸던 n번방이 정체를 드러내고 나서 디지털 장의사 업체에 증거 인멸을 요청하는 사람들의 의뢰가 줄을 이었다고 한다. 국내 1호 디지털 장의사로 알려진 산타크루즈컴퍼니 대표 김호진 씨는 지난 7월 유퀴즈 방송에서 “최근 문제가 된 n번방 가해자가 자신의 신상 정보를 삭제해달라며 건당 1억을 의뢰조건으로 걸었지만 받을 수 없어서 거절했다”고 말했다.

 

올바른 직업 의식과 가이드라인 필요

현재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평생교육진흥협회에서는 ‘디지털 장의사’라는 명칭의 민간 자격증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자격증 시험은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총 25문제로 구성되어 있다. 이외에도 온라인 평판 관리사 및 인터넷정보처리사 등도 디지털 장의사들이 주로 갖추고 있는 자격증으로 불린다. 해당 자격증들의 보유 여부는 활동을 위한 필수 조건이 아니기에 업무 진입 장벽이 낮은 편에 속한다. 일각에서는 공인인증제도가 없기 때문에 업계마다 업무의 신뢰도와 정확도 차이가 천차만별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명확한 직업 규정이 필요함을 주장하고 있다.

최근에 디지털 장의사 업체 사이에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모든 정보를 삭제해줄 수 있다는 과장 광고를 내세우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실제로 업체 측에서 90% 이상은 삭제할 수 있지만 운영자와 연락하기 어려운 다크웹이나 출처가 모호한 게시물은 어디선가 계속 유통될 수 있기 때문에 완벽한 삭제를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나아가 산타크루즈컴퍼니 측은 디지털 장의사 업체가 상업적인 홍보에 치중하는 순간부터 의뢰인의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기존 취지에 어긋날 수 있음을 강조했다.

디지털 장의사는 2017년 한국 고용정보원이 발표한 ‘향후 5년 내 급성장할 유망 직종’으로 선정되었으며, 지난해에는 비상경제 중앙대책본주회의에서 진행된 ‘미래 산업 직업구조 대비 신직업 활성화 방안’ 논의에도 포함되었다. 정부는 50여개 신직업 창출을 위해 공인 탐정, 개인정보보호 전문관리자, 디지털 장의사에 대한 입법 작업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더욱 주목받게 될 직업이지만 업무 관련해서 명확한 제도적 규정이 부족한 상황에 머물러있다. 디지털 범죄 협조자라는 오명을 벗고 잊힐 권리를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정당하게 지켜주는 업체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업계 내에서 서로를 감시하고 자정 역할을 할 수 있는 협회가 존재해야 한다는 의견도 들려온다. 잊힐 권리와 알 권리 사이에서 올바른 균형을 찾아갈 수 있는 가이드라인과 함께 디지털 장의사의 순기능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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