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새로운 코미디의 판도를 열어가
스탠딩 코미디 쇼에도 도전
대한민국 코미디의 양상도 점차 변화중
[한국연예스포츠신문] 김지환 기자 = 매주 일요일 밤을 책임졌던 개그콘서트가 종영된 지 약 1년이 지났다. 개그콘서트 엔딩곡을 들으면 내일이 월요일인 것이 실감이 나 괜히 울적해지곤 했지만, 이제 모두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다. 1999년에 첫 방송을 시작한 개그콘서트는 공중파 중 유일한 공개 코미디 쇼였으며, 당시 최장수 코미디 프로그램이었다. 또한 유명한 코너와 코미디언들을 배출해냈기 때문에 종영 당시에 코미디언들은 각종 매체에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10월 25일 방영된 SBS '미운 우리 새끼'에서 김준호 집을 방문한 홍인규는 "요새 일도 없다. 예전엔 결혼식, 돌잔치 사회를 봐 애들 학원비도 대고 그랬는데 요즘은 코로나19로 행사가 취소됐다"고 털어놨다. 11월 30일 방송된 KBS Joy '무엇이든 물어보살'에서도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날 의뢰인으로 출연한 KBS 공채 코미디언 송준석은 20대 청춘을 '개콘'에 바쳤다며 종영 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함께 출연한 배정근은 "'개콘'이 폐지되면서 일자리 잃은 KBS 개그맨이 적어도 70명"이라면서 "꿈을 포기해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신인들을 배출할 수 있는 가장 큰 통로인 공중파 코미디 프로그램이 사라지면서 한 측에선 신인 발굴의 어려움의 문제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또한 인지도가 없는 코미디언들의 경우 생계의 문제도 달려 있다. 개그콘서트 종영 이후 대한민국 코미디의 판도는 어떻게 바뀌고 있을까. 1년 전, 우리가 예상했던 것처럼 우리 곁에서 코미디는 아예 사라져 버렸을까?
한국에서는 생소하게 여겨졌던 스탠드업 코미디에 도전
그동안 공개 코미디 쇼에 익숙했던 한국에서 생소한 플랫폼인 스탠드업 코미디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스탠드업 코미디는 코미디언들이 홀로 무대에 서서 마이크 하나만 들고 관객들을 웃기는 코미디 형식이다. 비교적 서구권에서 많이 제작되는 형식으로 대본을 미리 짜고 연기를 보여주는 콩트와는 반대로 재밌는 농담과 뛰어난 순발력으로 무대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 국내에서는 유병재의 'B의 농담'이 실제 공연에서도 매진될 정도로 높은 인기를 이끌어 냈고, 넷플릭스에서 방영되며 대중들에게 스탠드업 코미디의 인지도를 높였다.
2020년 1월부터 시작한 박나래의 'STAND UP!'은 OTT 서비스 뿐만 아니라 TV에서 직접 방영되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박미선, 장도연과 같은 유명한 코미디언 뿐만 아니라 신인 코미디언들도 무대에 올라올 기회를 제공했고, 마술사 최현우, 변호사 서동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재밌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올해 2월 넷플릭스에서 이수근이 진행하는 스탠드업 코미디 쇼 '눈치코치'를 제작 중이라는 소식도 전해졌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이수근의 눈치코치’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눈치만 보다 세월 다 가는 관객들의 고민을 ‘눈치의 대가’ 이수근이 상담하며 쏟아내는 애드리브를 담아낸다. 넷플릭스는 ‘케빈 하트: 왓 나우?’ ‘엘런 디제너러스: 공감능력자’ ‘에이미 슈머: 가죽 의상 스페셜’ 등 해외 최정상급 코미디언의 스탠드업 코미디를 선보여와 이수근과는 어떤 시너지를 낼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전에는 별다른 인기를 끌지 못했고, 코미디언들도 도전하지 않았던 스탠드업 코미디쇼가 이렇게 꾸준히 제작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20년 동안 비슷한 콩트가 반복되고, 내용적으로도 다양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외면 받는 것”이라며 “유튜브를 통해 재밌는 영상이 쏟아지는 시대에 다양성을 잃은 코미디 프로그램은 식상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스탠드업> 연출을 맡은 김상미 PD는 제작 당시 “스탠드업 코미디 형식이 유튜브 1인 방송이나 넷플릭스 콘텐츠를 혼자 집중해서 보는 젊은 세대에게 익숙한 장르라고 봤다”며 “<개그콘서트>가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코미디라면 <스탠드업>은 어른을 위한 코미디로 방향을 잡았다"고 소개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그동안 진행되었던 정형화된 콩트보다는 새로운 코미디의 형식에도 눈길이 가고 있는 것이다. 아직 우리나라 코미디의 주류라고 볼 순 없지만, 꾸준히 제작된다면 언젠가 더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산악회", "아이돌", "소개팅"
유튜브 속 다양한 코미디 컨셉에 열광하는 대중들
유튜브가 대중적인 플랫폼이 되면서 많은 코미디언들도 유튜브에서 다양한 제작물을 보여주고 있다. 이전에는 코미디언들이 직접 운영하는 채널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컨셉은 '깜짝 카메라'였다. 친한 코미디언 선배들한테 거짓말을 하고 반응을 보거나, 동료에게 고백을 하는 식의 영상들이다. 하지만 비슷한 컨텐츠들이 끊임없이 생산되기 때문에 갈수록 자극적일 수밖에 없었고, 소수의 매니아층을 얻을 수는 있었지만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그 중 신선한 컨셉으로 유튜브를 넘어 공중파 방송까지 출연하며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코미디언들이 있다. 바로 "피식대학"과 "빵송국"이다.
먼저 피식대학은 이용주, 김민수(SBS 16기), 정재형(KBS 29기)의 공채 개그맨 세명이 운영하는 채널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출연하는 영상을 주로 제작하고 친분이 있는 선후배 개그맨을 종종 객원 멤버로 출연시키기도 한다. 이들도 처음에는 깜짝 카메라 형식의 영상으로 유튜브를 시작했지만 현재는 '모큐멘터리(페이크 다큐)' 형식의 컨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이들은 여러가지 컨셉을 내세우고, 각자 역할을 부여하여 영상의 처음부터 끝까지 연기를 이어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컨셉 중 '한사랑 산악회'는 산악회에 속한 중년 남성들이 함께 모여 산행을 하며 발생하는 일들을 담고 있다. 또 '최준' 캐릭터를 탄생시켜 각종 광고, 방송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급상승 시켰던 'B대면 데이트'도 있다. 코로나 확산 이후 생긴 플랫폼으로 영상통화를 통해 다단계 판매, 중고차 딜러, 카페 사장, 래퍼, 재벌 3세 등 다양한 캐릭터와 소개팅을 하는 컨셉이다.
빵송국은 KBS 29기 공채 개그맨인 이창호, 곽범이 운영하는 채널이다. 이들이 인기를 얻게 된 것은 글로벌 아이돌 그룹을 컨셉으로 한 '매드몬스터' 컨텐츠 때문이다. 아이돌들이 실제로 자주 하는 활동인 화보 촬영, 안무 연습, 브이앱 라이브 등을 따라하는 영상을 주로 올리고 있다. 유튜브 영상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내 루돌프' 곡을 발매하고, 팬클럽 '포켓몬스터'를 모집하면서 코미디 세계관을 확장시키고 있다.
홍수처럼 매일같이 쏟아지는 유튜브 속 아주 많은 영상 속에서도 이들이 인기를 얻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MZ세대의 문화 소비 특성으로 주목받고 있는 '과몰입' 성향과 딱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MZ세대는 콘텐츠를 단순히 수용하지 않는다. 콘텐츠에 푹 빠져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다른 팬들과 소통하며 2차 창작물을 만들기도 한다. 과몰입은 이러한 MZ세대의 문화 소비 특성이 반영돼 등장한 용어로 풀이된다.
이재흔 대학내일 20대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이러한 현상을 MZ세대의 ‘컨셉친(concept+친(親)’적 특성이라고 분석했다. 컨셉친은 MZ세대가 취향에 맞는 콘셉트와 세계관에 과몰입하며 서로 교류하는 성향을 의미한다. 이 연구원은 “2020년 MZ세대 트렌드 키워드는 콘텐츠를 직접 참여하며 즐길 수 있는 ‘판’을 열고 논다는 의미의 ‘판플레이’였다. 이런 놀이문화가 진화하며 세계관까지 확장한 것”이라며 “MZ세대는 뚜렷한 세계관과 디테일한 콘셉트나 설정을 가지고 있어 몰입이 쉽고, 해당 콘텐츠로 다른 사람과 교류하기 쉬운 콘텐츠에 반응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피식대학은 "한사랑 산악회" 컨셉에 맞추어 약수터에 있는 빨간색 바가지, 등산용 스카프를 굿즈로 만들기도 하고 "B대면 데이트" 영상에서는 구독자들이 소개팅에서 탈락할 사람들을 투표로 지명하게 하여 피식대학이 만든 세계관에 참여 시키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캐릭터에 따라서 인스타그램 계정을 따로 만들어 컨셉에 맞는 게시물을 올리기도 했다. 빵송국의 팬들은 매드몬스터의 뮤비를 보면서 리액션 영상을 올리거나, 굿즈 언박싱 영상을 올리는 등 유튜버의 컨셉에 맞추어 영상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 속에서도 저력을 보여주고 있는 코미디 빅리그
개그콘서트가 종영 된 이후 코미디 빅리그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현존하고 있는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 되었다. 2020년 코로나 19가 세계를 강타하면서 관중들의 참여가 필수적으로 여겨졌던 코미디 빅리그에 큰 타격이 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무관중 체계'로 동료 코미디언들이 관객석에 앉아 재밌는 리액션을 보여주면서 슬기롭게 헤쳐나갔다. 그리고 현재 또 다른 변화를 추구하여 영상 통화를 통한 비대면 형식으로 관중들과 함께 호흡하며 새로운 공개 코미디를 보여주고 있다. 온라인 방청 경쟁률은 20대1에 달하며 변함없는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을 입증했다.
또한 코미디 빅리그는 유일한 신인 코미디언 등용문으로도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기존 공중파 방송국 프로그램처럼 따로 공채 오디션을 보고 뽑지는 않지만, 극단에서 코미디 연극을 연출하고 직접 연기하고 있는 지망생들을 비공개 오디션으로 채용하고 있다. 코미디 빅리그 안제민 PD는 신인 등용에 대해 “유튜브를 통해 누구나 스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더 이상 끼 있는 친구들이 코미디 무대에 목을 매지 않아도 되는 것이 요즘이지 않나. 그래서 인물의 등용보다는 소재와 형식의 새로움을 찾는 것이 우리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인물을 아무리 밀어도, 그가 출연하는 코너가 새롭지 않다면 시청자의 외면을 받기 마련이다. ‘코미디 빅리그’ 코너 하나 하나가 조금 더 진화하면서 그 안에 투입되는 인물들이 부각된다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얼굴들이 발굴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아직까지 코미디 빅리그가 건재한 이유로 사람들은 자유로운 코미디언들의 애드리브와 신선하다는 점을 뽑고 있다. 평소 코미디 프로그램을 자주 시청하는 A(25)씨는 코미디 빅리그에 대해 "코미디 빅리그를 전부터 많이 보았는데, 틀에 짜여진 느낌이 들지 않고 본인들이 마음껏 끼를 발산하는 것 같아서 편하게 보게 된다. 또 이전에는 기성 코미디언들만 나와 크루를 결성하고 코미디를 진행해 '고인물'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요즘에는 이은지, 김해준같은 비교적 신선한 페이스의 코미디언들도 자주 나와서 더 많이 챙겨보게 된다."라고 밝혔다.
유튜브를 통해서 시청 중이라는 B(21)씨는 "짬이 날 때마다 볼 수 있게 짧게 편집이 잘 되어 있어서 '무한도전'과 함께 자주 본다. 전에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많이 보지 않았는데, 요즘 방영 중인 '슈퍼차부부 2021'에서는 '1호가 될 순 없어'에 자주 나오는 코미디언 부부들이 나와서 재밌는 애드리브를 보여주는 영상을 보고 재밌다고 생각해 유튜브 채널에 올라올 때마다 보고 있다."라고 전했다.
침체될 것이란 예측을 깨고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부는 코미디 계
개그콘서트의 종영 이후 국내 코미디 계는 침체될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다. 하지만 앞서 살펴 보았듯 기존에 없던 신선한 컨셉과 플랫폼으로 코미디 계는 여전히 건재하게 우리 곁에 남아있다. 코미디의 전통과 같이도 여겨졌던 공개 무대 속 '콩트'라는 양식을 깨고 스탠드업 코미디, 유튜브 속 모큐멘터리, 온라인 방청 등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내고 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새롭게 생긴 컨셉들에 도전하며 긍정적인 경쟁을 이끌어내고, 다시끔 코미디의 전성기가 찾아올 수도 있다. 또한 진부함에 등을 돌렸던 대중들도 점차 다시 코미디 컨텐츠를 찾고 있는 추세다.
일에 지치고 고달픈 우리에게 코미디는 항상 웃음을 주고 힘을 북돋아 주는 역할을 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됨에 따라 많이 지친 국민들에게 새로운 코미디가 다시 활기를 되찾아 주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