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권하는 사회’ 속 진정한 취미 찾기란?
‘취미 권하는 사회’ 속 진정한 취미 찾기란?
  • 조세령 기자
  • 승인 2021.05.20 15: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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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라밸 추구∙자기계발 등 다양한 이유로 취미 즐겨

주류의 취미를 따라가지 못하는 박탈감과 강박 느끼는 경우도 있어

진정한 취미 찾기 위한 주체적인 고민 필요

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한국연예스포츠신문] 조세령 기자 =  취미의 사전적 의미는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다. 공부나 근무 시간을 벗어나 즐기는 활동이기에 저녁 있는 삶을 중요시하는 워라밸 개념을 제외하고 말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에서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을 뜻하는 워라밸이 주목받기 시작한 시점은 언제일까? 2017년 7월 고용노동부에서 ‘일·가정 양립과 업무 생산성 향상을 위한 근무혁신 10대 제안’을 발간했으며, 이듬해 『트렌드 코리아 2018』에서는 ‘소확행을 꿈꾸는 워라밸 세대’를 언급하면서 워라밸을 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코로나 19 상황에서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여가 시간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직장인 및 구직자, 아르바이트 근로자 총 3067명을 대상으로 ‘선호하는 삶의 방식’에 대한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 직장인의 65.8%, 아르바이트 근로자의 62.5%가 워라밸을 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미 수업을 주력으로 하는 온라인 플랫폼 ‘클래스101’이 5월 초 기준 전년 대비 3배 증가한 1800여개의 클래스, 누적 방문자 3000만 명을 보유한 것은 ‘취미 붐’을 보여주는 여실한 증거다.

 

심리적 안식처이자 자기계발을 위한 창구

일명 '취미 붐'이 일어난 이유는 분명하다. 취미 활동이 바쁜 현대인의 삶에서 스트레스 해소를 돕는 재충전의 시간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뇌에 존재하는 ‘놀기 회로’와 ‘일하기 회로’에서 한 쪽에만 집중한다면 두 회로가 경쟁 관계를 형성하면서 번아웃을 겪게 된다고 말한다. 이상적인 협력 관계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노는 능력’인 취미라는 것이다.

UN의 ‘2021 세계행복보고서’에서 행복지수 1위에 선정된 핀란드는 국가 차원에서 취미 활동을 적극적으로 장려한다. 핀란드 아동문화센터 협회는 '어린이·청소년 복지, 특히 정신 건강에 취미가 미치는 중요성'에 관한 연구 결과에서 취미와 정신 건강 사이의 긍정적인 상호 관계를 발견했으며, 이를 곧바로 초등학교 운영 계획에 적용했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학생들이 취미 활동에서 소외될 것을 우려하면서 헬싱키 시내 21개 초등학교에서 3학년부터 6학년 학생들이 방과 후 무료 취미 교실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는 취미가 국민의 건강한 생활 습관에 관여하는 영향을 중요시 여기는 선진국의 문화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블루’라는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시점에서 취미 생활을 통해 심리적 불안감을 이겨내는 사람 역시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국민건강실태조사에 의하면 우울 위험군은 2018년 3.8%에서 지난해 무려 22.1%까지 증가했다. 미국의 심리학자 패트리샤 린빌 교수가 발표한 ‘자아의 다양성’ 이론은 취미 생활로 다양한 자아를 가지게 된 사람이 취미 생활 없이 살아가는 사람보다 우울증과 불안장애에 걸릴 위험이 낮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매번 비슷한 일상과 활동 반경으로 지친 마음에 취미를 특효약으로 제안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대표적인 취미 플랫폼 '탈잉'과 '클래스101'에서는 자기계발을 돕는 수업이 마련되어있다 / 출처: (좌) '탈잉' 홈페이지 캡쳐, (우) '클래스101' 홈페이지 캡쳐
대표적인 취미 플랫폼 '탈잉'과 '클래스101'에서는 자기계발을 돕는 수업이 마련되어있다 / 출처: (좌) '탈잉' 홈페이지 캡쳐, (우) '클래스101' 홈페이지 캡쳐

우리나라에서 취미란 여가 시간을 채우는 가벼운 활동이기도 하지만, 자기계발의 영역에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단순한 성공이 아닌 성장을 추구하는 자기계발형 인간을 뜻하는 말인 ‘업글인간’은 『트렌드 코리아 2020』에서 제시한 개념으로, 취미활동에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을 아깝게 여기지 않는다. 2019년 알바몬이 성인남녀 785명을 대상으로 ‘업글인간 트렌드 현황’이라는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64.5%가 본인 스스로를 업글인간으로 여긴다고 응답했으며, 20대의 34%가 ‘새로운 경험과 즐거움의 경재를 개척하는 취미 업그레이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대표적인 온라인 취미 플랫폼 클래스 101과 탈잉에서는 글쓰기, 영상 편집, 창업 가이드 강의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결과물을 얻기 쉽고, 남들과 공유할 만한 가치가 담긴 취미를 추구하는 업글인간을 저격한 요소이다. 이재흔 대학내일20대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취미를 함께 공유하는 커뮤니티가 인기를 끄는 배경으로 MZ세대가 추구하는 성취감을 들어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단순하게 생각했던 취미 활동을 결과물로 남기면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며 “취미 활동의 확장성은 ‘기록 남기기’가 쉬워진 시대 배경도 한 몫 했다”고 덧붙였다.

 

취미를 선택하고, 즐기는 과정이 주체적인가?

‘취미 부자’ 현대인들이 증가하는 긍정적인 동향 이면에는 유행하는 취미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이유로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검색에 ‘취미’를 입력하면 무려 948만 개의 게시물이 등장한다. 피드를 둘러보면 취미에도 분명한 유행과 흐름이 존재하는 것이 느껴진다. 등산, 클라이밍, 골프, 베이킹, 다이어리 꾸미기 등 일명 인기 있는 취미들이 몇 가지 카테고리로 분류되는 것이 보인다. 취미가 음악 감상이라고 하더라도 보여줄 만한 요소가 있는 수식어구가 붙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예를 들면, ‘오래 전부터 수집해 온 LP판으로 듣는’ 음악 감상처럼 말이다.

결국 그럴듯해 보이는 취미만 기록에 남고 ‘가벼운’ 취미는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는 이유로 모습을 숨기고는 한다. 심신 안정이나 자기 만족을 위해 시작한 취미 활동에 급을 나누는 일이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지다가도 결국에는 자랑할 수 있는 취미활동과 그렇지 않은 활동을 나누거나, 경중을 가리게 되는 것이다. 문경연 저자는 ‘취미가 무엇입니까?’라는 책에서 취미를 있는 그대로 즐기지 못하는 세태를 꼬집어 말하고 있다. 저자는 유명인이 가진 취미를 ‘고상하다’고 칭찬하는 배경에는 ‘저열한 취미’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며, 여전히 취미가 남의 수준을 가늠하거나 자신을 평가하는 잣대로 쓰일 수 있다고 말한다.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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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보여주기식 취미’에 매몰된 자아는 일하는 자아를 보충해주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기보다는 멋진 취미를 찾고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을 낳는다. 대학생 A씨(26)는 취업 준비 기간동안 스트레스 관리를 목적으로 기타 연주, 필라테스, 건강식 만들기 등 다양한 취미 생활을 즐겨왔다. 인스타그램에 취미 계정을 따로 운영하면서 남은 여가 시간을 알차게 보내려는 포부를 가졌지만 지금은 잠시 ‘취미스타그램’ 게시를 멈췄다. 취미를 즐기는 자신의 모습이 좋았던 건지, 취미를 전시하면서 타인에게 듣는 칭찬과 시선을 즐겼던 건지 혼란이 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일정이 바빠서 취미 활동을 하지 못한 날이면 그 날을 알차게 보내지 못했다는 생각에 우울했고 결국 취미를 ‘잘’ 즐겨보겠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길을 택했다.  

A씨처럼 취미의 본질을 잃고 강박을 경험한 사람들은 ‘슈드비 콤플렉스’를 겪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슈드비 콤플렉스란 항상 뭔가를 해야 하는 강박으로, 생산적이지 않은 일로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이 들거나 할 일이 없는 날이면 불안함을 느끼는 현상이다.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취미에 억지로 기준을 맞추고 있지는 않는지, 타인과의 취미와 비교하는 과정에서 본인의 취미를 평가절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진짜' 취미가 필요하다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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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를 일상의 윤활유처럼 현명하게 활용하려면 취미 그 자체와 효용을 따지기 보다는 취미 활동을 하는 본인의 마음가짐에 집중해야 한다. 의미 있고 알찬 취미로 시간을 채워야만 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무엇이든 하고 싶은 취미를 해도 괜찮다는 태도가 결국엔 우리가 추구하던 심리적 안정이나 자기계발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일지도 모른다. ‘자기계발을 위해서 이러한 취미를 택한다’보다는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한 취미이기에 성장했다’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말을 빌리고자 한다. 그는 “진정으로 행복하고 안정된 삶을 원한다면 적어도 2~3개의 취미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 취미는 ‘진짜’ 취미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럴듯한 취미를 권하는 사회에서 ‘진짜’ 취미가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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