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던 대하사극이 자취를 감춘 이유
사랑받던 대하사극이 자취를 감춘 이유
  • 안지윤 기자
  • 승인 2021.06.14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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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적 인기 끌던 대하사극

막대한 제작비와 미디어 환경 변화로 자취 감춰

시청자들의 갈증, 다시 관심받기 시작하는 대하 사극

2014년 방영한 KBS 드라마 '정도전' 포스터. / 출처 : KBS 홈페이지
2014년 방영한 KBS 드라마 '정도전' 포스터. / 출처 : KBS 홈페이지

[한국연예스포츠신문] 안지윤 기자 = KBS가 7년 만에 선보이는 '태종 이방원'이 올 하반기 방영 예정인 가운데, 문경시와 업무 협약을 맺었다. 양승동 KBS 사장은 "문경시는 지난 2000년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 촬영을 위해 문경새재 오픈 세트장을 건립한 이래, 대한민국 대표 사극 촬영지이자 인기 관광도시로 자리매김했다. '태종 이방원'을 계기로 앞으로도 함께 꾸준히 정통 대하드라마를 제작해 나갈 수 있도록 지속해서 협력해 나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라고 말하며 문경시와의 협약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KBS 대하드라마의 명작 중 하나인 '태조 왕건'은 2000년 당시 최고 시청률 60.2%였다.  배우 고현정의 복귀작이자 출연 배우들의 열연으로 화제였던 MBC '선덕여왕'은 2009년 방영 당시 최고 시청률 43.6%를 기록하며 대하 사극의 인기를 다시 한번 증명했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에는 퓨전 사극이 더욱 많이 등장했다. '성균관 스캔들', '해를 품은 달'을 시작으로 최근의 '철인왕후'와 '조선구마사'까지 지상파와 종편 채널의 구분 없이 다양한 퓨전 사극이 방영됐다.

퓨전 사극도 사극이라고는 할 수 있으나 기존의 정통 사극, 대하드라마와는 거리가 있다. 시대적 배경만 빌려온 후 허구의 캐릭터나 이야기는 새롭게 창작된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왜곡이라는 문제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시청자들은 다시 대하 사극과 같은 정통 사극 드라마에 대한 갈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바람과는 달리 대하 사극은 쉽게 제작되기 어려운 현실에 속에 점점 사라져갔다. 

 

무시할 수 없는 막대한 제작비

제작사와 방송국의 입장에서 드라마 제작에 들어가는 비용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현대 사회가 배경이 아닌 만큼 세트와 의상, 장소 등 역사고증에 들어가는 비용이 상당하다. 또한, 기본적으로 출연자가 많다 보니 출연료 규모도 크다. 여기에 빈번히 등장하는 전쟁 장면의 경우엔 막대한 인건비와 말 대여비, 소품비 등 막대한 제작비가 들어간다. 그렇다고 현대극처럼 제작비 지원을 명목으로 PPL(간접광고)를 받을 수도 없다. 2000년대 제작된 '불멸의 이순신'과 '대조영'의 경우 총 제작비로 350억 원가량이 들었다.

 

KBS 방영작 '불별의 이순신' / 출처 : KBS 홈페이지
KBS 방영작 '불별의 이순신' / 출처 : KBS 홈페이지

사극은 주로 방송 전후 CF 등으로 이익을 얻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업계에선 평균 시청률이 30% 이상은 나와야 제작비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 사용률 증가와 OTT 서비스 등장으로 인해 TV 시청률이 떨어지고 있는 요즘 30%라는 시청률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지상파 방송사의 한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지상파에서 황금시간대를 보장받는다고 해도 시청률을 담보할 수도 없고, 광고 수익 면에서도 불리한데 사극에 수백억 원을 쏟아붓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대하 사극의 어려운 제작 환경을 설명했다.

 

온전히 작품에 집중해야 하는 배우

출연진의 입장도 대하 사극 출연을 마냥 반기기는 어렵다. 대하 사극은 일반 드라마 보다 훨씬 회차가 길다. 그렇다고 회차당 출연료가 많지는 않다. 일반 미니시리즈보다 낮은 편에 속한다. '태조 왕건'은 200부작으로 2000년 4월 1일부터 2002년 2월 24일까지 방영됐다. '여인천하'는 애초에 50회 편성이었지만 인기가 높아지마 150부작으로 늘렸다. 2001년 2월 5일부터 2002년 7월 22일까지 방영됐다. 이후 사극 역시 회차가 짧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50부작을 넘기는 추세가 계속됐다.

'선덕여왕'은 62부작으로 2009년 5월 25일부터 2009년 12월 22일까지 방영됐다. 정통 사극은 아니지만 정사와 야사를 섞으며 역사고증과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사랑받은 '육룡이 나르샤'의 경우 50부작으로 2015년 10월 5일부터 2016년 3월 22일까지 방영됐다. 짧게는 반년, 길게는 2년의 시간을 작품에 투자해야 한다. 이로 인한 배우들의 부담감 역시 상당하다. '태조 왕건'에서 궁예 역을 맡았던 배우 김영철은 "작품을 하는 2년 여간 다른 활동은 꿈도 꾸지 못하고 '태조 왕건'에만 집중해야 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발성과 호흡, 의상 역시 배우에겐 부담스러운 요소 중 하나다. 일반 연기와 달리 '사극톤'이라고 하는 발성과 호흡이 평상시에 사용하지 않는 특수한 어투이다 보니 경력이 많인 대배우라 하더라도 연기력 논란에 휩싸이기 쉽다. 의상으로 인한 고충도 많다. 한여름의 폭염을 견디기에 의상이 너무 두껍기도 하고, 얇은 의상의 경우 겨울의 날씨를 견디기 힘들다.

 

SBS 드라마 '여인천하' 속 주인공들의 모습. 머리에 쓰고 있는 가채는 수 kg에 달한다. / 출처 : SBS 홈페이지
SBS 드라마 '여인천하' 속 주인공들의 모습. 머리에 쓰고 있는 가채는 수 kg에 달한다. / 출처 : SBS 홈페이지

여배우의 경우엔 머리에 쓰는 소품인 '가채'도 한몫을 한다. 무게가 수 kg에 달하는 가채는 목과 머리에 심한 무리를 준다. 배우 배종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가채로 인한 고충을 호소했다. "가채에 머리를 올리고 수 시간 촬영을 하다 보면 초등학생 한 명을 머리 위에 얹고 생활하는 것 같다. 머리에 쥐가 난 것처럼 쿡쿡 쑤신다. 가채가 머리를 찌르는 가시면류관과 다를 바가 없다"라고 설명했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의 시청자들

정통 사극을 원하는 시청자도 있지만 그들 모두가 TV로 송출되는 작품을 시청할지는 장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과거와 달리 기술의 발전과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으로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TV 드라마의 경우 24부작이 기본이던 시절에서 이제는 16부작이 기본이 되었다. 작년 종영한 드라마 '산후조리원'의 경우 8부작으로 편성됐다. 회차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청자에겐 이마저도 지루하다. 긴 영상을 짧게 보는 흔히 말하는 '짤방'으로 콘텐츠를 소비하고, 짧지만 밀도 높은 콘텐츠 감상 방식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넷플릭스와 왓챠같은 OTT 서비스가 그 변화의 중심에 있다. 긴 흐름의 작품도 있지만, 해외 드라마나 넷플릭스 오리지널같은 자체 제작 드라마의 경우 한 시즌이 7회가 끝인 경우도 있다. 시청자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콘텐츠를 볼 수 있는 매력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TV 시청 시간 스마트폰이 국내 보급되며 점점 줄어들었다. OTT 서비스도 여기에 한몫을 하고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발표한 '코로나, 미디어 지형을 바꾸다' 보고서 내용을 살펴보면 하루 평균 TV 이용 시간(주중 기준)는 정체와 감소 추세가 계속되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와 실외 활동 제약으로 인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며 2020년 TV 시청 시간은 증가하기도 했다. (2017년 2시간 58분 → 2018년 2시간 57분 → 2019년 2시간 55분 → 2020년 3시간 9분)

 

정통 사극에 대한 시청자들의 갈증

어렸을 때부터 사극을 즐겨봤다는 대학생 A 씨(24세)는 대하 사극의 부활을 기다리고 있다. "어렸을 때 본 '여인천하'가 한국사 공부를 할 때 작지만 도움이 됐다. 무작정 암기하기만은 벅찬 역사를 드라마 내용과 관련지어 생각하면 기억도 훨씬 잘 난다. 퓨전 사극도 좋지만, 탄탄한 대본과 배우들의 연기력이 뒷받침되는 작품이 보고 싶다"라고 말하며 교육 자료로서 정통 사극의 영향력을 언급하기도 했다. 

 

MBC 드라마 유튜브 채널인 '옛드'에서 드라마 '허준' 영상을 업로드하고 있다. / 출처 : 유튜브 채널 '옛드' 영상 목록
MBC 드라마 유튜브 채널인 '옛드'에서 드라마 '허준' 영상을 업로드하고 있다. / 출처 : 유튜브 채널 '옛드' 영상 목록

퓨전 사극이 인기를 끌면서 많은 퓨전 사극 작품들이 등장했다. 타임슬립 장르가 유행하기도 했고, 주로 왕의 사랑 이야기가 주를 이루기도 했다. 퓨전 사극을 통해 중장년층이 주 시청자층이던 사극이 10대와 20대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마저도 사극 장르의 획일화를 가져온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여기에 역사왜곡 논란까지 이어지며 시청자들은 정통 사극, 대하 사극에 대한 갈증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여론을 파악한 듯 지상파 3사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과거 방영했던 사극을 클립 형식으로 업로드하고 있다. 이용자들은 '요즘엔 찾아볼 수 없는 사극', '요즘 사극은 옷이며 장신구가 화려해서 보는 재미는 있지만 고증은 뒷전..예전 사극이 진짜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SBS 드라마 유튜브 채널 '빽드'에 공개된 '여인천하' 영상에 달린 댓글들. 이용자들이 퓨전사극에 대한 아쉬움과 정통 사극의 부활을 언급하고 있다./ 출처 : 유튜브 채널 '빽드' 영상 댓글
SBS 드라마 유튜브 채널 '빽드'에 공개된 '여인천하' 영상에 달린 댓글들. 이용자들이 퓨전사극에 대한 아쉬움과 정통 사극의 부활을 언급하고 있다./ 출처 : 유튜브 채널 '빽드' 영상 댓글

수익성 문제와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대하사극의 모습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퓨전 사극이 등장하며 장르의 다양화가 이루어졌지만, 배경만 역사적 시기를 빌려오는 팩션 사극이 우후죽순 등장하며 역사왜곡 문제까지 불거졌다. 이는 시청자들에게 잘못된 역사 인식을 전달할 수 있다. 그렇기에 대하 사극의 가치와, 그에 대한 시청자들의 갈증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대하 사극 제작 및 방영으로 획일화된 사극 드라마 시장이 더욱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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