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학점 인플레 현상, 이대로 괜찮을까?
대학교 학점 인플레 현상, 이대로 괜찮을까?
  • 조세령 기자
  • 승인 2021.06.15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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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평가∙완화된 상대평가로 A학점 비율 확대

협동하는 분위기에 부담감 덜어… 긍정적인 반응

‘코로나 학번’만 좋은 학점 챙겨간다는 역차별 우려도

평가 방식 점검 및 논의가 필요한 시점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연예스포츠신문] 조세령 기자 = 대학가는 2020년 1학기부터 일명 ‘코로나 학기’를 맞았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과 시험이 불가피해지자, 성적 평가방식을 기존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 혹은 ‘완화된 비율의 상대평가’로 변경한 학교가 늘어났다. 대면 수업과 비교했을 때 교수와 학생의 만족도가 낮아진 수업 방식과 비대면 상황에서 공정한 객관식 시험이 어려워졌다는 등의 이유가 작용했다.

성균관대학교는 지난해 4월 ‘2020학년도 1학기 성적평가 방식 변경 안내’를 통해서 ‘A등급 30%이내 A+B등급 65%이내’ 이던 수업은 ‘A등급 40%이내, A+B등급 80%이내’로, ‘A등급 40%이내, A+B등급 75%이내’인 수업은 ‘A등급 40%이내, A+B등급 80%이내’로, ‘A등급 50%이내, A+B등급 90%이내’는 현행과 동일하게 유지한다는 공지를 발표했다.

완화된 성적 산출 기준은 ‘학점 인플레’라는 현상을 낳았다.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2021년 4월 대학정보공시 분석 결과’에 의하면 지난해 과목별 B학점 이상을 취득한 4년제 대학생은 전체의 87.5%로 2019년(71.7%)보다 15.8%포인트 증가했다. 과목별 A학점을 받은 학생 비율은 전년 대비 21%포인트 증가한 54.7%를 기록했다.

 

학습 부담 감소∙ 협동 위주의 학습 등 긍정적인 변화

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학점 인플레 현상을 두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대학생들은 절대평가나 완화된 상대평가 방식이 학습 부담을 덜어준다고 주장한다. 학생 개인의 성적을 다른 학생의 성적과 비교하여 상대적인 위치로 평가하는 상대평가와 달리, 미리 설정된 평가 기준에 따라 학생의 학업 성취 수준이 목표에 도달했는지 측정하는 절대평가가 과도한 경쟁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는 것이다.

코로나로 대면 시험 비중이 줄어든 대신에 과제 대체 시험이나 서술형 시험이 많아지면서 자칫하면 학습 부담감이 커질 수 있는 상황에서 시기적절한 평가방식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A씨(22)는 “절대평가를 시행하겠다는 학교의 공지가 없었더라면 학업 부담이 심한 학기였을지도 모른다”며 “객관식 시험이 비중이 줄면서 주차 과제와 리포트 비중이 커졌고 과목별로 투자하는 공부시간이 늘어났지만 절대평가라는 이유로 성적 걱정은 그나마 덜 수 있었다”고 답했다.

상대평가에서는 한 집단 내에서 줄 세우기 식으로 성적이 갈리기 때문에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경쟁자가 되고는 한다. 코로나 이후로 성적 기준이 완화되자 경쟁보다는 협동 위주의 학습이 늘었다는 의견도 있었다. 경희대 경제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B씨(24)는 “비대면 수업은 아무래도 대면 수업보다 공지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거나 혼선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며 “다행히도 같은 수업을 수강하는 학생들끼리 오픈채팅방을 만들어서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등 학습을 돕는 문화가 전보다 활발해졌다. 비대면 상황에서 학점 경쟁까지 과열된다면 스트레스를 받았겠지만 절대평가 덕분에 보다 여유로운 태도로 임할 수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학점 인플레의 우려를 뒤로하고 절대평가 방식의 순기능을 보여준 선례도 있다. 연세대 의대는 2014년부터 H(Honor, 최상위 수준)와 P(Pass), NP(Non Pass)라는 세 가지 성적만을 표기하는 절대평가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연세대 의대 학생회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학생들 사이에서 연구나 봉사 등 자발적 활동이 늘어났다”고 전했으며 교수와 학생이 공동 연구한 국제학술지 논문수가 2014년 1건에서 2017년 17건으로 늘어나는 등 주입식 강의형 학습 방식에서 참여주도형 학습으로의 변화가 있었음을 설명했다. 학생들에게서 성적 압박을 덜자 협동하는 분위기와 함께 점수를 내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깊이 있는 학문 탐구의 길이 열렸다는 주장이다.

 

학번간∙학교간 역차별 문제 발생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반대 입장에 선 학생들은 학점 인플레가 문제가 되는 이유로 ‘역차별’을 언급하고 있다. 10명 중 8명 이상이 B학점 이상을 취득할 만큼 좋은 학점을 받기 쉬워진 상황에서 일명 ‘코로나 학번(20학번 또는 21학번)’과 그렇지 않은 학번 사이에 불공평한 차이가 생긴다는 것이다.

특히나 학점이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는 대학원이나 로스쿨 준비생들 사이에서는 관련 논쟁이 깊어지기도 했다. 로스쿨 합격은 LEET(법학적성시험)와 학업성적, 공인어학시험성적 등이 좌우하는데 절대평가의 혜택을 본 신입생과 경쟁하려는 다른 준비생들은 학업성적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생각에 우려가 많다. 올해 서울대 로스쿨 신입생의 학업성적 평균은 60점 만점에 58.02점이었으며, 학교마다 대략적으로 4.5점 만점에 4.2점 이상의 학점을 성취해야 합격 안정권에 들어오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즉, 학점 인플레 현상으로 학점 0.1점 차이로 경쟁이 과열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로스쿨 입시에서 학점이 차지하는 비중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서울대 로스쿨 관계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량평가에서 학업성적은 학교별, 학과별 차이를 구분하지 않고 있다”고 했지만 “정성평가 과정에서 학업 능력과 태도, 법률가로서의 소양과 발전가능성 등을 심층적으로 검토하고, 면접 및 구술고사를 통해 지원자의 자질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고 덧붙였다. 학점 인플레로 생길 불이익을 고려해 평가 방식을 조정하겠다는 의견이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지침은 제시되지 않았다.

 

학교별 A학점 성적 분포 / 출처: 대학성적공시
학교별 A학점 성적 분포 / 출처: 대학성적공시

학교별로 절대평가 시행 여부와 완화된 상대평가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학점 격차에 대한 불만이 표출되기도 했다. 지난 3일 대학정보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2학기 성균관대는 전공과목 수강생들 중 43.6%, 한양대는 47.3%에게 A학점을 부여했지만 경희대, 고려대, 한국외대, 서강대, 서울시립대, 서울대 등은 수강생 60%가 A학점을 가져가는 등 차이를 보였다. 한양대는 지난 2학기에 전공과목 A학점 비율이 전년 동기 대비 3.3%p 증가하는 데 그쳤지만 한국외대는 30.1%p 증가하면서 전년 대비 약 2배 확대된 수치를 보였다.

성균관대 심리학과 4학년 C씨(25)는 “다른 학교 친구들은 ‘절대평가 덕분에 이득을 봤다’라고 하는데 상대평가를 유지하는 학교에 다니는 입장에서는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며 “학교마다 코로나 학기에 대응하는 성적 산출 방식이 다르다 보니 생긴 혼란이라고 생각한다. 취준생 입장에서 학점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괜히 채용 과정에서 불이익이 있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전했다.

 

변별력 잃은 학점에 스펙 경쟁 치열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취업 시장에서도 쉽게, 높은 학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을 모를 리 없다. 취업 스펙에서 변별력을 잃어가는 학점 대신에 대외활동, 인턴 경험, 직무 관련 경험 등 다른 분야에서의 스펙 경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했다. 학점과 외국어 점수를 강조하던 대규모 공개 채용 대신에 직무 중심의 소규모 수시 채용과 채용 연계형 인턴 모집이 늘어나는 등 취업 동향에도 변화가 생겼다. 지난 6일 구인구직 매칭플랫폼 사람인에서 기업 439개사를 대상으로 ‘채용시 불필요∙필요한 스펙’에 대해 질문한 결과, 전체 응답기업 중 66.7%가 꼭 갖춰야하는 필수 스펙 1위로 업무 관련 자격증(69.3%, 복수응답), 2위 컴퓨터 능력 관련 자격증(27%), 3위 인턴 경험(20.5%) 순으로 답했으며, 학점은 13%에 그쳤다.

변별력을 잃은 학점 대신에 직무관련 능력을 판단할 수 있는 스펙을 중요시하는 흐름이 강조되면서 학교에서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 대신에 외부활동 및 스펙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28일 취업 플랫폼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4년제 대학교 학생 487명을 대상으로 ‘올 여름방학 기업 하계 인턴십 지원 계획’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64.3%에 해당하는 응답자가 지원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지원 이유로는 ‘취업 스펙을 쌓기 위해서’가 76.7%의 응답률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앞으로의 방향은? 평가 방식에 대한 고찰 필요

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학점 인플레 현상에 대한 논의가 뜨거워진 배경 이면에 존재하는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해서 애써야 하는 학생들과 줄 세우기 평가와 주입식 수업에 익숙해진 대학의 풍경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지은림 경희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점수로 서열화하는 데 집착하지 말고 학생들이 (문제 해결에 필요한)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더 많은 걸 습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가르치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라며 “평가도 그런 목적에 맞춰 기능할 수 있도록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학점과 대학 교육의 의미가 퇴색되어가는 과도기인만큼 전반적인 혁신이 필요한 시기다.

서울대가 지난 7일 2021학년도 2학기 수업 기본 방침으로 ‘정부 방역지침과 각 단과대학(원)별 가용 차원 범위 내에서 대면 수업을 실시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점차 대면 수업을 적용하는 대학교의 비율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상대평가냐 절대평가냐를 논하기 전에 평가 신뢰도 확보에 초점을 맞춰야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학생들이 혼동하는 부분에 있어서 교·강사가 수업 계획서 등을 통해서 명확한 기준을 전달하고 공정한 성적 산출을 위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가 불러온 비대면 상황에서 적용한 절대평가 방식을 다시금 상대평가 방식으로 전환할 것인지, 현 시점에서의 평가 방식을 두고 벌어진 갈등을 풀어갈 방안은 무엇인지 등의 논의점이 바람직한 결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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