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트도 인종차별 될 수 있을까
폰트도 인종차별 될 수 있을까
  • 조은교 기자
  • 승인 2021.08.02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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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양궁협회, 인종차별적 글꼴 사용해 논란
폰트로도 인종차별 될 수 있어
출처 : 세계양궁협회 트위터
한국 양궁 선수 소개 영상 캡처 / 출처 : 세계양궁협회 트위터

[한국연예스포츠신문] 조은교 기자 = 세계양궁협회가 공식 트위터 게시물에서 아시아인을 차별하는 요소가 담긴 글꼴을 사용해 논란에 휩싸였다.

세계양궁협회는 지난 27일 공식 SNS에 한국 양궁 국가대표 선수들을 소개하는 게시물을 올렸다. “한국 여자 양궁선수들은 9번의 올림픽 중 8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한국 선수들은 예선전을 높은 성적으로 통과해, 메달을 추가 획득할 기세다”라는 내용이었다.

문제가 된 것은 글의 내용이 아니라, 함께 올린 선수 소개 영상 자막에 사용한 글꼴이었다. 해당 영상에서 ‘Chop Suey(찹 수이)’라는 글꼴이 사용되었는데, 이 글꼴을 두고 인종차별에 대한 논란이 있었기 때문이다.

출처 : 세계양궁협회 트위터
출처 : 세계양궁협회 트위터

이 게시물을 본 SNS 이용자들은 “당황스럽다”, “굳이 그 글꼴을 사용했어야만 했냐”는 등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세계양궁협회 측은 “누군가를 비하하기 위한 의도는 아니었다”며 “도쿄올림픽 양궁의 로고로 차용한 ‘엔소 심볼(enso symbol)’과 붓으로 그린 듯한 분위기를 맞추기 위한 것”이라 설명했다.

 

Chop Suey(찹 수이)에 담긴 인종차별

Chop Suey는 Wonton(훈툰-중국식 만두)이라고도 불린다. 변형시킨 글꼴로는 Buddha(부처), Ginko(은행), Shanghai, China Doll, Martial Arts, Rice Bowl, Karate 등이 있다. Chop Suey는 미국식 중화요리의 일종으로, 채소볶음과 비슷한 요리다. 모두 그저 ‘동양’적인 느낌을 내려 붙인 이름이지, 디자인과는 큰 상관이 없다.

특히 아시아인이 아닌 사람이 사용하는 경우, 인종차별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인종차별적인 콘텐츠를 만들 때 이 글꼴이 많이 쓰였기 때문이다. 원형인 'Mandarin'체는 1800년대 중반부터 미국에서 쓰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Chop Suey'의 사용은 세계 2차 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2차 대전 당시 항일 선전 포스터에 많이 쓰였다.

또한 서양에서 인종차별을 할 때 쓰이는 찢어진 눈, 튀어나온 치아를 가진 사람의 이미지와 함께 보이는 경우가 많다. 2002년 의류 브랜드 ‘아베크롬비(Abercombie & Fitch)’는 티셔츠에 음식을 든 찢어진 눈의 캐릭터와 함께 chop suey를 사용한 로고를 넣어 소비자들에게 큰 규탄을 받은 적도 있었다.

2012년에는 피트 훅스트라(Pete Hoekstra) 네덜란드 대사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중국인으로 보이는 이미지와 Chop Suey 글꼴을 사용해 논란에 휩싸였던 적이 있다. 당시 사용된 이미지의 소스 코드에서 ‘yellow girl’이라는 태그가 함께 발견돼 더욱 큰 비판을 불러 일으켰다.

2018년에는 한국계 미국인 앤디 김(Andy Kim) 의원에 대한 공격을 위한 전단에 쓰였다. 해당 전단은 “Something is REAL FISHY about ANDY KIM(앤디 김에게서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난다)"라는 문구와 함께 앤디 김 의원의 탈세 의혹을 제기하는 내용이었다. 특히 ‘REAL FISHY’와 ‘ANDY KIM’ 부분에서 Chop Suey 폰트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인종차별적 의도가 다분함을 느낄 수 있다.

2020년에는 레깅스로 유명한 의류 브랜드 ‘룰루레몬(lululemon)’에서 ‘박쥐 볶음밥’이라는 이름의 티셔츠를 출시했다가 사과했던 일도 있었다. 이 티셔츠는 박쥐 날개와 젓가락이 꽂혀 있는 중국 음식 테이크아웃 박스 일러스트와, ‘No Thank You’가 Chop Suey 폰트로 인쇄되어 있었다.

1980년대 반일 감정의 물결이 거셌던 시절 활동을 시작한 일본계 미국인 기자 길 아사카와(Gil Asakawa)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 글꼴을 보면 반아시아적 혹은 반일적 단어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Jap', 'nip', 'chink', 'gook', 'slope'(모두 아시아인 혹은 일본인을 비하하는 단어들)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이 글꼴은 나를 겨냥한 인종차별과 연관이 있는 경우가 아주 많았다"라고 말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그렇다면 Chop Suey를 사용한 모든 콘텐츠가 인종차별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이 폰트를 이용한다고 해서 꼭 인종차별적인 것은 아니다. Chop Suey 자체는 동양 문화권에서 많이 쓰이는 붓글씨를 모티브로 디자인된 것이고, 실제로 중식당 등에서 많이 이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뿐만 아니라, 아시아(인도, 베트남, 일본, 한국 등)의 음식을 파는 경우에도 이용되기도 한다. 글꼴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어떠한 음식을 파는 곳인지를 효과적으로 알리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확실히 있다. 아시아인 스스로도 사용하는 폰트임에도 불구하고, 관련한 논란이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2009년 디자인 전문 매거진인 ‘Print’에서는 “Chop Suey가 아시아적인 느낌의 대표격으로 쓰이는데, 이는 고정관념이다. 이 글꼴은 그들의 문화를 진정으로 반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해당 국가의 사람들이 모욕적이라고 느낄 수 있다”라고 짚었다.

Chop Suey는 타 문화권의 사람이 보는 아시아의 이미지를 담은 글꼴이라고 할 수 있다. 폰트 하나로 ‘동양’적인 느낌을 받는다는 것의 저변에는 아시아의 모든 국가는 다 비슷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모든 나라는 각기 다르고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인도 등 다양한 아시아의 국가를 떠올릴 때 모두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서구적’인 느낌을 대표하는, 혹은 어떤 한 나라의 느낌을 주기 위해 쓰이는 특정한 폰트가 있는가.

그런 의미에서, 세계양궁협회의 콘텐츠는 전 세계에서 콘텐츠를 보는 SNS 이용자들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당황스럽고 불쾌하다는 많은 사용자들의 반응이 이를 뒷받침한다. 폰트를 사용한 맥락과 의도는 주관적인 것이라 판별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특정 집단을 비하하려는 의도를 가졌거나, 혹은 그렇게 보일 수 있는 콘텐츠 생산은 지양되어야 한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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