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디 VS 희화화, 그 경계는 어디인가
패러디 VS 희화화, 그 경계는 어디인가
  • 최은규 기자
  • 승인 2021.09.29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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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에 대한 입장 차이로 계속되는 갈등

'건강한 웃음'을 위해 필요한 노력

'SNL 코리아' 인턴 기자 캐릭터의 한 장면/출처: 쿠팡플레이 유튜브
'SNL 코리아' 인턴 기자 캐릭터의 한 장면/출처: 쿠팡플레이 유튜브

[한국연예스포츠신문] 최은규 기자 = 지난 9월 4일 쿠팡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 쿠팡플레이를 통해 4년 만에 돌아온 'SNL 코리아'가 화제다. 화려한 게스트 라인업보다 더 뜨거운 반응을 얻은 건 '인턴 기자' 캐릭터였다. 쿠팡플레이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인턴 기자 첫 번째 하이라이트 영상의 조회수는 무려 500만 회를 넘었다. 영상은 인턴 기자 역을 맡은 배우 주현영이 패기 넘치게 자신을 소개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 후 주현영은 앵커 역을 맡은 코미디언 안영미가 리포팅 내용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자 "좋은 질문? 지적? 감사합니다"라며 당황하는 모습을 통해 발표나 면접 자리에서 긴장하는 사회 초년생의 모습을 완벽하게 연기했고, 젊은 세대의 공감대를 얻었다. 시청자들은 "현실에서 누구나 한번쯤 봤을 법한 전형적인 말투나 발음이었다. 침 삼키고 목소리 떨리는 것까지 디테일이 완벽하다" "관찰력과 묘사력이 뛰어나다" "현실 고증을 제대로 했다" 등 배우의 연기에 대해 극찬했다.

 

특정 대상에 대한 희화화로 비춰질 수 있어

하지만 모두가 웃을 수는 없었다. 취업준비생 A씨는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영상을 다 못 보고 꺼 버렸다. 미숙할 수밖에 없는 인턴의 모습을 웃음거리로 만들어야 했나"라는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취업준비생 B씨 또한 "아직 말투가 어색하고 부족하지만 여기저기 면접을 보러 다니고 있는 내 노력이 희화화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같이 인턴 기자 캐릭터의 어리숙한 모습은 비슷한 상황을 겪은 시청자들에게 상처가 되었고, 굳이 그것을 개그 소재로 삼아야 했냐는 비판을 받았다.

특정 인물의 모습을 모방하거나 패러디하는 것은 그 인물에 대한 희화화로 비춰질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지금까지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 패러디 사례는 여럿 있었다. 지난해, 의정부고등학교 학생들이 '관짝소년단'을 패러디한 사진이 공개되어 논란이 제기되었다. '관짝소년단'은 가나 남부 아크라 지역에서 활동하는 관 메는 사람들이 관을 들쳐 메고 음악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는 영상이 유명해지면서 탄생한 하나의 밈이다. 이런 밈을 패러디한 학생들이 인종차별을 했다는 지적을 받은 이유는 얼굴을 검게 칠하는 분장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방송인 샘 오취리가 "흑인 입장에서 매우 불쾌한 행동"이라며 "문화를 따라하는 건 알겠는데 얼굴 색칠까지 해야 하나"라고 SNS를 통해 비판해 논란은 더 커졌다.

온라인 의류 쇼핑몰 '무신사' 또한 논란을 피해가지 못했다. 지난 2019년 무신사는 인스타그램에 게재한 양말 광고 게시물에 '속건성 책상을 탁 쳤더니 억 하고 말라서'라는 문구를 사용했다. 네티즌들은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는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당시 경찰의 거짓말을 패러디한 광고 문구에 대해 "역사의식이 아예 없다" "아무런 사전조사 없이 마케팅에 이런 문구를 쓰다니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앞으로 무신사 쓸 일은 없을 듯"이라며 거세게 비판했다. 결국 무신사 측은 해당 게시물을 삭제하고 "해당 사건이 가지는 엄중한 역사적 의미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 콘텐츠 검수 과정을 적극적으로 개선하여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며 사과문을 게재했다.

 

희화화다 VS 패러디다, 거듭되는 의견 충돌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특징 묘사, 성대모사와 같이 누군가를 따라하면 다 조롱일까? 어디까지가 기분 나쁘지 않은 패러디일까? 희화화와 패러디 사이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고 개인마다 그 기준이 달라 네티즌들은 매번 '희화화다 VS 패러디다'를 두고 설전을 벌인다.

지난 7월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에 양궁 국가대표 김제덕 선수의 '코리아 파이팅!'을 패러디하며 특별한 응원을 전하는 영상이 업로드되었다. 이에 대해 일부 시청자들은 "이게 뭐가 웃기냐. 유명인 희화화하고 조롱하는 게 웃기냐" "애정과 응원은 다른 방식으로 해라. 불쾌하다"며 비난했다. 하지만 또 다른 시청자들은 "너무 예민한 거 아닌가, 따라만 하면 다 희화화하는 거냐" "나쁜 의도 있는 거 아닌 게 딱 봐도 보이는데 왜 그렇게 비도덕적인 사람으로 몰아가려 하냐"며 오히려 그들을 비판했다.

이 밖에도 최근 대중문화평론가 위근우는 자신의 SNS를 통해 개그맨 유세윤이 '까치블리'라는 이름으로 유명 인스타그램 셀럽들을 따라하며 그들의 감성을 흉내내는 것에 대해 비판했다. 그는 "이게 재밌나? '몸매 노출하는 걸로 인스타에서 쉽게 돈 버는 된장녀들'이라는 굉장히 때리기 쉽고 다들 욕하고 싶어하는 대상을 골라 비웃는 것뿐이다. 여기에 개그로서 어떤 기발함이 있고 풍자로서 어떤 기개가 있나?"라며 장문의 글을 올렸다. 이에 대해 일부 네티즌들은 "풍자 대상은 '모든 여성'이 아니라 불법 탈세와 과장 광고를 일삼는 '82피플'이다" "일상 속 흔히 보이는 유형의 사람들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 것뿐인데 뭐가 문젠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처럼 몇몇 사람들은 "약자에 대한 희화화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그 표현은 조롱이다"라며 패러디 요소에 대해 지적하고, 또 다른 몇몇은 "그렇게 하나하나 따지다 보면 피곤해서 어떻게 사냐"라며 반박한다. 이렇게 계속되는 갈등으로 인해 제작자의 본래 기획 의도는 묻히고, 갈등 자체에 초점이 맞춰지는 불상사도 일어난다. 이러한 현상을 통해 건전한 콘텐츠 문화의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반면 콘텐츠 생산자들을 위축시키고 콘텐츠를 만드는 방식에 제한을 두게 만든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패러디 콘텐츠의 긍정적 효과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 신년사 영상(위)을 패러디한 피식대학 영상 장면(아래)/출처: 신세계그룹 뉴스룸 유튜브, 피식대학 유튜브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 신년사 영상(위)을 패러디한 피식대학 영상 장면(아래)/출처: 신세계그룹 뉴스룸 유튜브, 피식대학 유튜브

때로는 의도치 않은 논란에 휩싸이기도 하지만 패러디가 원본 영상의 주인공에게 주는 긍정적 효과는 크다. 가수 비는 자신의 노래 '깡'이 '1일 1깡' 열풍을 일으키며 밈으로 패러디되는 것에 대해 불편해하지 않고 호응한 덕분에 제 2의 전성기를 맞았다. 그리고 '피식대학'은 '2021 신세계그룹 정용진 신년사' 영상을 '2021년 김갑생할머니김 이호창 미래전략실 전략본부장 설인사(대외비)'라는 제목으로 패러디해 큰 인기를 끌었다. 그 인기는 원본 영상에까지 이어져 신세계그룹 신년사 영상의 조회수가 증가했고 댓글엔 피식대학 구독자들이 역주행 흔적을 남겼다. 이 덕분에 신세계그룹은 젊은 이용자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갔고 덩달아 홍보 효과도 얻게 되었다.

시청자들 또한 배가 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유튜브 채널 '엔조이커플'은 최근 엄청난 화제를 모으고 있는 Mnet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패러디한 '스트릿 개그우먼 파이터' 콘텐츠를 제작했다. 영상에서 개그우먼들은 실제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 출연하는 댄서들과 비슷한 이름과 스타일링으로 등장해 각자의 댄스 실력을 뽐낸다. 시청자들은 "재미는 기본이고 싱크로율, 포인트, 기획력이 엄청나다" "조롱 하나 없이 불편하지 않고 너무 재밌다. 스우파 끝날 때까지 계속 보고 싶다"며 호평했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 출연하는 댄서들도 직접 패러디 영상에 댓글을 남기며 재치 있게 반응했다.

패러디 콘텐츠는 특정 대상의 특징을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그 대상에 대한 호감도를 상승시키기도 한다. '피식대학'의 콘텐츠 중 하나인 '한사랑산악회'에서는 30대 개그맨들이 50대 중년의 산악회 회원들을 실감나게 연기한다. 주위에 그런 인물들이 실제 존재할 것만 같은 뛰어난 연기 덕분에 20~30대의 50대에 대한 인식은 훨씬 좋아졌다. 시청자들은 "평소에 시끄럽게 수다 떨고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아저씨들을 보면 사실 짜증나고 싫었는데, 한사랑산악회를 보고 난 뒤로는 그런 어르신들을 보면 왠지 귀여워 보이고 흐뭇하다" "그동안 아버지 입장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한사랑산악회를 통해 아버지 세대의 감성을 알게 되고 아버지와 더 많은 대화를 시도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서로에게 불편하지 않은 패러디는 세대 간의 이해와 소통을 돕고 특정 대상에 대한 경계를 허문다.

 

제작자와 시청자 모두의 노력 필요

어디까지가 패러디이고 어디까지가 희화화인지 명확한 기준을 세우기는 어렵고 여전히 시청자의 반응은 엇갈린다. 같은 콘텐츠에 대해 누구는 웃고 누구는 불편해한다. 모두가 웃을 수 있는 패러디 콘텐츠를 위해서는 제작자와 시청자 양쪽의 노력이 필요하다.

제작자의 경우, 제작에 있어서 표현의 자유가 존중받아야 하는 건 사실이지만 지킬 건 지켜야 하며 콘텐츠 기획 과정에서 충분한 고려와 사전조사가 필요하다. 또한, 패러디의 큰 화제성과 파급력을 인식하고 신중하게 제작해야 한다. 같은 주제에 대해 표현방식을 바꾸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SNL 인턴 기자에 대해 "웃음 코드는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다"며 "풍자와 희화화는 누구를 웃음의 포인트로 제시했느냐로 갈리는데 '인턴 기자'에서는 갑을 앵커로 을을 인턴 기자로 설정해놓았다는 점에서 사회 초년생들을 희화화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약자를 우스꽝스럽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비판이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숙한 인턴 기자 캐릭터로 설정하되, 앵커의 질문에 울면서 뛰어나가는 모습보다는 극복해내는 모습으로 표현했다면 비판적인 의견을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시청자의 경우, 콘텐츠 감상 시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거두고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 표면상으로 보이는 연기만 보고 평가하기보다는 제작자의 기획 의도와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에 더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사실 '인턴 기자' 영상엔 수도권의 현 거리두기 방식과 재난지원금 지급 기준에 대해 앵커가 "완화 조치는 어떤 근거에서 결정된 것이냐" "국민지원금 지급 기준인 '소득 하위 88%'의 기준이 무엇이냐" 등의 질문을 던지는 모습과 함께 정치 풍자의 의도도 담겨 있으나, 인턴 기자의 연기에 관심이 집중되어 잘 드러나지 못했다. 실제로 영상 댓글에서는 정치 풍자 내용에 관한 언급을 거의 찾아볼 수 없어 풍자 프로그램으로써의 역할을 마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도 드러났다.

 

웃자고 만든 패러디가 누구에겐 풍자로, 누구에겐 희화화로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무조건적인 패러디보다는 적정선을 지킨 풍자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건강한 웃음'을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동시에 다양한 관점이 존재할 수 있는 콘텐츠에 굳이 갈등을 만들고, 콘텐츠 생산자들을 위축시키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어떤 것이 좋은 패러디인가에 대해 우리 모두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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