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흘리는 장면은 그만, 공포 소구에서 벗어난 PR의 도약
피 흘리는 장면은 그만, 공포 소구에서 벗어난 PR의 도약
  • 임성은 기자
  • 승인 2021.11.30 10: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극이 아닌, 참여를 유발하는 PR
사회 분위기에 맞는 PR을 해야 해
출처 : 보건복지부 금연광고 갈무리
출처 : 보건복지부 금연광고 갈무리

[한국연예스포츠신문] 임성은 기자 = 집에서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청소년들이 “노담!”을 외치는 것을 보고 관심을 가진 적이 있는가? 만약 그랬다면 당신은 PR의 변화를 이미 느꼈다.

PR은 ‘Public relations’의 줄임말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이미지 제고, 제품 홍보 등 공중의 이해와 협력을 얻기 위해 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뜻한다. PR은 환경, 건강, 문화 등 여러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공익 포스터, 광고, 캠페인 등이 PR에 해당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공익 광고에 대해 물으면 자극적인 장면을 기억하곤 한다. A씨는(의정부, 42) ‘공익광고’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가면을 쓰고 인터넷으로 누군가에게 악성 댓글을 다는 장면이 생각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B 씨(서울, 19)는 “친구한테 ‘너는 담배를 안 피웠으면 좋겠어’라고 말한 장면이 기억이 난다”라고 답했다. 이는 올해 광고상을 휩쓴 ‘노담’ 캠페인의 한 장면이다. 과거 공익 광고를 본 사람과 최근 공익 광고를 본 사람이 기억하는 장면이 상반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을 사회 분위기 속에서 찾았다.

 

자극적인 게 기억에 잘 남아, 공포 소구 PR

머릿속에 오래 기억되게 하도록 인간의 심리 중 공포 본능을 자극하는 PR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마약 근절, 음주 운전 예방, 흡연 등 우리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주제에 많이 사용되는 공포 소구 PR은 사회적 이념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초래될 수 있는 부정적 결과에 초점을 맞춰 다른 대안을 채택하도록 하게 한다.

이는 조작적 조건화(operant conditioning)와 연결된다. 조작적 조건화는 사람들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행동은 계속 수행하고, 부정적 결과를 낳는 행동들은 피하도록 학습하게 될 때 발생한다. 즉, PR에 담긴 메시지를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경우 PR에 담긴 폭력적 장면이 현실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이러한 부정적 결과를 낳은 행동을 스스로 하지 않도록 자각시키는 것이다.

출처 : 더 늦기 전에 보건복지부 광고
출처 : '더 늦기 전에' 보건복지부 광고

이러한 이유로 과거 PR은 자극적인 장면이 상당 부분 차지했다. 보건복지부에서 2014년에 진행한 금연 캠페인 ‘더 늦기 전에’는 흡연으로 뇌졸중 발병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뇌졸중 환자의 모습을 가감 없이 광고에 녹여냈다. 또한, 공익광고협회에서 진행한 ‘인터넷 테러’ 공익 광고에서는 테러를 당한 사람들이 울거나 좌절하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영상에 담아내며 부정적 결과로 연상될 수 있는 모습에 집중했다.

하지만 조작적 조건화를 기반으로 한 공포 소구 PR은 한계가 있다. 처벌을 통해 사람들의 부정적 행동을 억제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것으로 지속적인 억제를 위해서는 높은 처벌 수위, 더 큰 자극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사람들은 공포 소구 PR을 봐도 “주변에서 사실 이렇게까진 아니지 않나?”, “이제는 이런 걸 봐도 아무렇지 않다” 등의 반응을 보이며 이러한 형태의 PR에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한 발 빠른 움직임, 해외 PR의 변화

인간의 심리적 본능 중 불안과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극적인 시각, 청각을 활용한 PR이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유발하는 사회 분위기에 맞춰 PR의 형태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일찍이 PR에서 공포 소구를 버렸다. 단순히 ‘하지 마세요’는 지시를 넘어 ‘다 같이 하지 맙시다’라는 일종의 문화적 차원에서 다가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예가 바로 2001년부터 지속적으로 이어져 오고 있는 ‘보프는 술에 취하지 않는다(BOB STAY SOBER)’ 캠페인이다. 보프(BOB)는 우리나라에서 ‘철수’ ‘영희’처럼 네덜란드에서 흔한 이름 중 하나로, 술자리가 시작되기 전 보프로 선정된 사람은 보프라 적힌 열쇠고리를 건네받고 술자리가 끝난 뒤 운전을 책임진다. 이는 술을 즐기며 진행되는 각종 공연이나 축제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보프로 선정된 사람은 손목에 도장을 찍고 행사가 끝난 뒤 음주 운전 측정을 한 후 술을 마시지 않으면 선물을 받는다.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무엇보다도 이 캠페인은 몸소 실천에 옮기는 것을 강조하는 만큼, 주류회사도 캠페인에 참여했다. 네덜란드 아메르스포르트 네덜란드교통안전협회(VVN)이 주류회사에 캠페인 참가를 제안했을 때 회의적인 반응이 많았지만,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VVN은 결국 2018년을 기준으로 3년간 주류회사의 보프 캠페인 후원을 약속했다.

네덜란드 운전자의 75%가 차량을 이용해 술이 있는 식사 자리에 가면 보프 캠페인에 참여하며 2002년 4%에 달하던 음주 운전 적발자가 2017년에는 1.4%까지 줄어들었다. 또한 이 캠페인은 네덜란드를 넘어 룩셈부르크, 독일 등 전 유럽으로 확대되고 있다.  

 

사회적 분위기를 담은 PR이 대세

우리나라도 ‘노담(NO담배)’ 캠페인을 통해 공포 소구의 PR에서 벗어나기 위해 본격적으로 발을 내디뎠다.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청소년의 흡연 예방을 위해 진행한 이 캠페인의 광고는 온라인에 익숙한 청소년들의 동참을 유발하기 위해 디지털 광고로 제작됐다. 이 광고에는 청소년들이 직접 등장해 밝고 활기찬 모습으로 노담의 이유를 설명한다. 또한, 회차를 거듭할수록 노담의 범위를 자신에서 주변인으로 확대하며 떡볶이를 먹다가 친구에게 노담을 권하는 등 흡연을 뒷골목으로 숨겨야 하는 것이 아닌 상대방에게 걱정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써 담아냈다.

출처 : 보건복지부 노담광고 갈무리
출처 : 보건복지부 노담광고 갈무리

본래 청소년들의 흡연은 ‘문제아’ 하면 떠오르는 것이었으며 기성세대에게는 훈육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 캠페인을 통해 ‘노담’이라는 단어를 통해 청소년의 흡연에 대해 편하게 소통할 수 있게 됐다. 즉, 노담 캠페인은 흡연이라는 무거운 주제의 벽을 부순 것이다. 이에 국민의 공감과 사회적 지지 형성을 끌어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2020대한민국 광고대상 TV영상 부문 금상에 올해 디지털 부문 ‘좋은 광고상’을 수상하는 등 광고 7관왕에 올랐다. 조인성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원장은 “노담(No담배) 광고의 수상은 국민과 전문가들이 직접 선택한 좋은 광고라는 점에서 흡연 예방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한 의미 깊은 수상으로 생각한다”라며 소감을 밝혔다.

 

 

물론, 누군가의 상처, 사고의 모습을 중심으로 제작한 PR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오래 기억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시’를 넘어 모두가 함께 만드는 문화적 참여를 ‘독려’하는 분위기를 강조하는 지금 인간의 공포, 불안 심리를 자극하는 PR은 오히려 반감을 유발하고 있다. 공중을 대상으로 이해와 협력을 끌어내는 PR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사회의 분위기, 즉 흐름을 이해하며 사회 분위기에 맞춰 변화를 이어가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중랑구 봉우재로 143 3층
  • 대표전화 : 02-923-6864
  • 팩스 : 02-927-3098
  • 제보, 문의 : kesnewspaper2@gmail.com
  • 주간신문
  • 제호 : 한국연예스포츠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10616
  • 등록일 : 2009-09-09
  • 발행일 : 2000-05-25
  • 인터넷신문
  • 제호 : 한국연예스포츠신문TV
  • 등록번호 : 서울 아 05031
  • 등록일 : 2018-03-23
  • 발행일 : 2018-03-26
  • 발행인 : 박범석
  • 편집인 : 박범석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범성
  • 한국연예스포츠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한국연예스포츠신문.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