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과 다양성을 존중하다, 성(性)벽을 무너뜨리는 '젠더리스'
취향과 다양성을 존중하다, 성(性)벽을 무너뜨리는 '젠더리스'
  • 최은규 기자
  • 승인 2021.12.07 18: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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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과 성차별 깨는 문화

젠더 뉴트럴, 젠더 스와프, 젠더 프리... 여러 개념으로 확장

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한국연예스포츠신문] 최은규 기자 = 치마를 입고 화장을 한 남자, 오버핏 수트를 입고 짧은 머리를 한 여자. 요즘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문화 '젠더리스(genderless)'다. 젠더리스란, 성과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옷차림을 즐기는 새로운 패션 경향을 뜻하며 성별의 경계를 허문다는 점에서 단순히 남녀공용을 말하는 '유니섹스'와 구분되는 개념이다. 젠더리스는 남녀를 떠나 개인의 개성과 취향, 자율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MZ세대에게 큰 인기를 끌면서 여러 브랜드가 주목하는 트렌드가 되었으며, 패션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다

출처: 가수 조권 인스타그램
출처: 가수 조권 인스타그램

젠더리스의 유행이 가져온 첫 번째 변화는 패션과 뷰티 산업에서 잘 나타난다. 먼저 패션업계에서는 '성별 구분 없는 옷'이 화두가 되고 있다. 특정 상품에 대해 남성이 입는 옷, 여성이 입는 옷이라고 단정 짓던 선입견을 깨고 성별 구분 없이 누구나 입을 수 있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가수 조권은 무대 위뿐만 아니라 무대 아래 일상에서도 하이힐을 즐겨 신는다. 그는 최근 패션 매거진 <보그 코리아>를 통해 "저는 제 페르소나가 하이힐이라고 생각해요. 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순간 자신감이 상승하고 에티튜드가 바뀌죠"라고 말했다. 이처럼 사람들은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취향대로 옷을 입기 시작했다. 남성들이 치마, 핸드백, 트위드 자켓을 활용하거나 여성들이 어글리 슈즈, 오버핏 수트 등의 '매니쉬룩'을 찾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다.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여러 패션 브랜드들도 젠더리스 요소를 마케팅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자라(ZARA)'는 남녀 모두 입을 수 있는 컬렉션 '언젠더드 라인(Ungendered Line)'을 선보였고 'H&M'은 '데님 유나이티드 라인(Denim United)'을 통해 성별 구분 없이 입는 다양한 형태의 데님 웨어를 판매했다. 또한, '컨버스'는 남성과 여성 의류를 구분해 14가지 사이즈로 나누던 기존 방식에서 성별이 아닌 체형 기준의 4가지 사이즈로 압축한 방식으로 변경한 젠더리스 의류 라인 '셰입스(SHAPES)'를 출시했다.

출처: 뷰티 브랜드 '라카(LAKA)' 인스타그램
출처: 뷰티 브랜드 '라카(LAKA)' 인스타그램

뷰티업계 내에서도 젠더리스 열풍이 불어 성별을 구분 짓기보다 다양한 피부톤과 피부 타입에 초점을 맞추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성 중립적 제품을 출시하는 추세다. 대표적인 브랜드로 2018년 국내 최초 '젠더 뉴트럴 색조 화장품 브랜드'를 컨셉으로 론칭된 '라카(LAKA)'가 있다. 라카는 '뷰티는 원래 모두의 것(Beauty is meant to be for everyone)'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남녀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색조 화장품을 선보이는 브랜드다. 라카의 이민미 대표는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누구에게나 쉬운 텍스쳐 속에,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컬러를 신선하게 담아 실용성을 높이는 데에 중점을 둔다. 여성이라서 해야 하고 남성이라서 하지 못할 일이 아니라 취향과 의지가 있다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게 뷰티의 즐거움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라카가 가진 과업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주로 여성으로 한정되어 있던 메이크업의 영역이 확장됨에 따라 올리브영과 롭스와 같은 화장품 매장에서는 남성 뷰티 모델을 자주 볼 수 있게 되었고, 뷰티에 대한 남성 소비자의 관심도 높아졌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남성 화장품 시장 규모는 지난해 1조 4000억 원을 돌파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또한 유튜브에서는 많은 남성 뷰티 유튜버들이 등장해 직접 사용해본 좋은 제품을 추천하거나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화장법을 소개하고 시청자들은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유익하다", "덕분에 뷰티 제품에 관심이 생겼다"라는 반응을 보인다.

이처럼 젠더리스로 인해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제품을 생산할 때 남녀 기준이 없어지면서 디자인과 색조가 훨씬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다. 그에 따라 소비자들은 선택지가 많아져 본인의 취향에 맞는 제품을 전보다 더 쉽게 찾을 수 있고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이 많아지는 효과가 있다.

 

성차별적인 요소 없앤다

젠더리스의 또 다른 효과는 성차별적인 요소로 인한 불편함을 없앤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같은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여성복과 남성복의 디자인, 원단의 질, 사이즈, 가격 등에 차이가 있어 불편함을 느끼는 소비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남녀 구분 없이 누구나 입을 수 있는 동일한 디자인, 원단으로 개개인의 취향을 담아서 제작한 젠더리스 의류가 출시되어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여주었다. 한 여성 소비자 A씨는 "개인적으로 허리 라인이 들어간 디자인을 좋아하지 않아 남성복이 더 취향에 가깝지만 사이즈가 맞지 않아 사지 못했었다. 이젠 내 취향에 맞는 옷을 살 수 있어 너무 편리하다"라고 말했다.

젠더리스로 인해 사회적 분위기도 개방적으로 바뀌었다. 출근 복장으로 반바지를 입는 것은 격이 떨어진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많은 남성 직장인들은 무더운 여름 날씨에도 긴 바지를 입고 출근해야 했다. 그러나 요즘은 젠더리스 붐으로 남성 반바지가 다양하게 출시되면서 여름철 출근 복장을 간소화하는 추세다. 이에 대해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반바지 허용은 단순히 복장 코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사내 구성원들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상징적 지표"라며 사내 반바지 문화 확산이 기업 이미지나 조직 문화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의견을 드러냈다.

젠더리스 문화는 남성과 여성, 성 소수자의 경계를 허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며, 전세계적으로 성 소수자를 포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미국을 포함한 11개국의 시민들은 여권에 남녀가 아닌 제3의 성별을 의미하는 'X'를 표기할 수 있다. 개인이 직접 자신의 성별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장난감 제조업체 '레고'는 앞으로 장난감에 '여아용' 또는 '남아용'이라고 표시하지 않고 성중립을 표방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사회는 모든 어린이의 창의성 강화를 위해 인식과 단어 등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 밖에도 일본 항공사와 네덜란드 철도, 영국 런던교통국 등은 영어 안내 방송에서 '신사 숙녀 여러분(Ladies and gentlemen)'이라는 표현은 이분법적인 성별을 전제로 하고 있어 성 소수자 고객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승객 여러분에게 알려드립니다(Attention, all passengers)' 또는 '여러분 안녕하세요(Hello everyone)'의 표현으로 변경했다.

 

문화계로 확산되다

패션 매거진 '마리끌레르'의 2021년 젠더 프리 프로젝트 영상 캡처/출처:  Marie Claire Korea 유튜브
패션 매거진 '마리끌레르'의 2021년 젠더 프리 프로젝트 영상 캡처/출처: Marie Claire Korea 유튜브

패션과 뷰티 업계에서 시작된 젠더리스 열풍은 문화계로 확산되면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첫 번째로, 남녀 구분 자체를 없애고 중립적으로 보아 사람 자체로만 생각하려는 움직임을 뜻하는 '젠더 뉴트럴(gender-neutral)'이다.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를린 영화제는 2021년부터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을 주연연기상으로, 남우조연상과 여우조연상을 조연연기상으로 통합해 배우의 성별에 따라 연기상을 나눠 시상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첫 여성 집행위원장인 마리에트 리센백은 "연기 부문에서 성별에 따라 상을 분리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 산업계에서 젠더 의식을 높이는 신호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두 번째로, '젠더 스와프(gender-swap)'는 영화, 드라마 등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인물의 성별을 전환하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시로 영화 <고스트버스터즈>와 <오션스8>이 있다. 두 영화 모두 원작과 비교했을 때 서사는 그대로이지만 주연 인물들의 성별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반전시킴으로써 성 역할 고정관념을 깨주었고, 같은 구성의 영화라도 성별을 전환시키면 얼마나 흥미로워질 수 있는지 증명했다.

세 번째로, '젠더 프리(gender-free)'는 캐릭터의 성별과 관계없이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을 말한다. 해외에서 시작된 '젠더 프리 캐스팅'은 국내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2015년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로 헤롯왕 역할에 여성을 캐스팅했고, <광화문 연가>의 월하 역에는 남성과 여성 배우가 더블 캐스팅되어 배역 설정에 성별 구분을 없앴다. 한편, 패션 매거진 '마리끌레르'는 2018년부터 매년 3월 8일 여성의 날을 기념하여 '젠더 프리 프로젝트' 영상을 공개하고 있다. 영상 속에는 여성 배우들이 각자 영화 속 남성 캐릭터의 대사를 연기하는 장면이 담겨 화제가 되었다.

이와 같은 문화계의 흐름은 성에 대한 사회문화적 분위기 변화뿐만 아니라 캐릭터와 연출의 폭을 다양한 방면으로 넓힘으로써 관객과 제작자 모두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젠더리스로 고정관념이 깨지고 경계가 많이 허물어지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일부 편협한 시선 때문에 또 다른 갈등을 낳을 수도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젠더 갈등과 관련해서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내가 생각하는 표준형과 다른다고 상대방을 폄훼하고 편 가르기를 하는 것"이라며 "내가 절대적으로 옳다는 맹동주의, 극단주의에 빠질 때 벌어지는 일"이라고 진단했다.

우리는 '진정한 나다움'에 초점을 맞춰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다양한 취향과 개성이 존재하는 만큼,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고 성별을 두 가지로만 나누는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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