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 권익 보호, 청각 장애인 시청자는 예외인가?
시청자 권익 보호, 청각 장애인 시청자는 예외인가?
  • 임성은 기자
  • 승인 2022.01.05 11: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어통역방송
실질적인 개선이 필요
실효성은 더 지켜봐야….
출처 :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월트디즈니플러스 자막 캡처 갈무리
출처 :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월트디즈니플러스 자막 캡처 갈무리

[한국연예스포츠신문] 임성은 기자 = ‘가랑이를 함께해요’, ‘넌 알겠니? 닝 헠헠’, ‘끼엔 안다 아이?’ ‘베가 꼰미고, 세뇨리따’

방금 읽은 문장의 뜻을 유추할 수 있다면 당신은 지금 당장 자막 회사에 취직해야 한다. 해당 문장들은 11월에 론칭한 '콘텐츠 공룡' 월트디즈니컴퍼니의 OTT서비스 디즈니플러스(디즈니+)에서 제공하는 자막이다. 디즈니플러스가 론칭 이후 번역기를 그대로 돌린 것보다 못한 자막을 제공하자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이용자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이용자들은 디즈니플러스가 아무리 '디즈니', '픽사', '마블', '스타워즈', '내셔널지오그래픽', '스타' 등 디즈니 핵심 브랜드 콘텐츠를 제공할지라도 자막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렇듯 영상을 소비할 때 도움을 주는 자막은 아주 사소한 것에도 큰 불편함을 유발한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 마저 감소하겠다며 서비스가 제공되기만을 바라는 사람도 존재한다. 바로 청각 장애 시청자이다. 장애인 방송 편성 및 제공 등 장애인 방송 접근권 보장에 관한 고시에 따라 지상파는 의무적으로 모든 방송 프로그램에 자막을 제공해야 하지만 청각 장애 시청자를 위한 장애인 방송 서비스인, 수어 통역 방송은 단 5% 비율만 제공하면 되기 때문에 청각 장애인 시청자는 미디어 사회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보건복지부에서 제공하는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의 청각 장애인의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청각 장애인 시청자를 위한 장애인 방송 서비스인 수어 통역 방송 개선이 끊임없이 요구되고 있다.

 

올림픽, 선거 방송을 즐길 수 없는 국민 : 청각 장애인 시청자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7월 도쿄에서 개최된 제32회 도쿄 올림픽은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보았을 것이다. 해설위원의 우렁찬 진행 소리와 호응은 올림픽의 재미를 더하는 필수 요소이다. 하지만, 이를 들을 수 없는 청각 장애인 시청자는 이런 해설의 묘미를 느낄 수 없다. 따라서 이를 대신 전달할 수어 방송이 매우 필요한 상황인데, 올림픽 개·폐막식이 아니면 수어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송사가 거의 없다. 심지어 장애인들이 선수로 참여하는 패럴림픽마저도 수어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아 경기 이해 자체를 어려워하는 청각 장애인 시청자도 많다.

이러한 문제점은 개표 방송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이하 장애벽허물기), 원심회 등 시민사회단체는 서울시 중구 인권위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작년 21대 국회의원선거 때 방송국 3사(KBS, MBC, SBS)가 수어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공직선거법 82조를 보면 ‘선거방송토론위원회는 대담·토론회를 개최하는 때에는 청각 장애 선거인을 위하여 자막방송 또는 한국수어통역을 하여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이는 대담, 토론회에 국한되어 있어 선거 방송의 연장선인 개표 방송은 의무 사항에서 제외된다. 이처럼 청각 장애인 시청자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하는 기본권조차도 누리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수어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기본적인 환경 조성 자체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도쿄 올림픽 개막식 당시 수어 통역사 한 사람이 4시간이 가까이 ‘독박 통역’을 진행했다. 수어 통역의 경우 단순히 손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로 나타내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크다. 그러나 도쿄 올림픽 개막식에서는 지상파 3사의 수어 통역사가 모두 긴 시간의 통역을 혼자 담당했다. KBS 수어 통역을 맡았던 조성현 한국수어통역사협회장은 "혼자 4시간을 내리 통역하고 나니 개막식이 끝난 뒤 초주검이 됐고, 질적으로도 완벽한 통역을 하기 어려웠다"라고 말했다.

 

청각 장애 시청자를 위한 발 빠른 움직임 : 해외 사례

반면 해외의 경우 청각 장애인 시청자를 위한 서비스 제공이 우리나라에 비해 원활히 이루어지고 있다.

출처 : 미국 대선 후보 토론 방송 화면 캡쳐
출처 : 미국 대선 후보 토론 DPAN.TV 방송 화면 캡쳐

DPAN.TV(Deaf Professional Arts Network TV)는 지난해 9월에 진행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과 민주당의 바이든(Joe Biden) 후보의 첫 TV 토론을 중계하며 조금 남다른 수어 통역 서비스를 제공해 이목을 끌었다. 한 사람이 모든 후보의 통역을 진행하던 방식이 아닌 통역사가 대선후보들과 진행자 역할을 각각 맡아 진행한 것이다. 후보자 2명이 동시에 발언하고, 사회자가 이를 제지할 때는 통역사 3인이 동시에 통역을 진행하는가 하면 후보자 2명이 발언할 때 가운데 통역사는 수화통역사의 통역을 보고 농인의 관점에서 통역을 진행하는 미러통역을 진행해 청각 장애 시청자들도 입체적인 토론을 즐길 수 있었다.

통역사 수 외에도 화면 비율에 있어서 해외의 경우 편의를 높였다. 국제농인연맹에서 권장하고 있는 수어 통역 화면 크기는 전체 화면의 3분의 1로 영국 BBC는 이를 지켜 수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수어 통역 화면 비율을 전체의 16분의 1로 규정하고 있지만 사실 이 화면 크기로는 청각 장애인이 손의 방향, 위치, 모양 등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수어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이외에도 일찌감치 수화를 공식 언어로 채택한 타 국가는 정부 공식 브리핑 때 수어 통역사 옆에 정치인을 세우기도 한다. 실제로 뉴질랜드 총리는 과거 이슬람사원 테러 사건을 계기로 반자동 소총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하면서 오른편에 수어 통역사를 세워 방송을 진행했다.

 

허점 가득한 수어통역방송 개선안

장애인 방송 편성 및 제공 등 장애인 방송 접근권 보장에 관한 고시에 따르면 지상파 방송사가 준수해야 할 장애인 방송물 제작·편성 비율은 ▲ 자막방송 100% ▲ 화면해설방송 10% ▲ 수어통역방송 5%로 규정하며 영국 BBC의 수준을 달성한 바가 있다. 이에 방통위는 장애인단체, 인권위의 개선 공고를 비롯한 미디어의 환경변화에 맞춰 수어통역방송의 비율을 기존 5%에서 7% 이상으로 높이는 미디어 격차 해소 방안을 발표했다. 또한, 방통위는 발표에서 장애인 방송 제작 지원을 실시간에서 비실시간까지, 지상파에서 일반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까지 확대해가며, 온라인동영상서비스 OTT 등에서의 장애인 방송 비율 또는 시간을 의무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인해 OTT가 우리 일상에 가까워졌음에도 불구하고 현행법상 장애인 방송 서비스 의무를 지니고 있지 않은 OTT를 활용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고 판단해 이를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출처 : 방송통신위원회
출처 : 방송통신위원회

하지만, 일각에서는 방통위의 수어방송서비스 개선 방안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KBS 8.8%, MBC 7.45%, SBS 7.1%로 2019년 기준 수어 통역 방송의 비율은 이미 7%를 넘겼다. 따라서 수어 통역 방송 비율을 높이는 것이 의미 있는지에 대해 지금 당장 판단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장애벽허물기는 “그동안 4차례에 걸쳐 고시를 개정했지만 수어 통역은 손조차 대지 않다가 9년이 지난 지금 고작 2% 올린다는 것”이라면서 “그것도 지상파방송이 하고 있는 7~8% 비율 그대로, 말로만 늘렸다고 했을 뿐 달라진 것이 없는 오히려 퇴보한 정책”이라고 이를 비판하기도 했다. 또한, 현재 방통위에서 진행 중인 AI(인공지능) 기반 음성자막수어 전환 시스템을 얼마나 고도화할 수 있는가도 집중 대상이다. OTT처럼 통신 기반 서비스의 경우 기존 방송이 OTT로 넘어갈 때 연계해야 하는 방법을 고려해야 하는데 AI 음성자막수어가 그 해결책으로 등장한 만큼, 해당 시스템이 고도화되지 못해 청각 장애인 시청자들 사이에서 상용화되지 않는다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 밖에도 장애인 방송 제작 지원을 실시간에서 비실시간 분야로 확대하는 등 소외계층의 시청권 확대를 위한 계획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또한, 방통위는 일반 스마트TV에 탑재할 장애인 특화 기능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예정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대국민 인식 제고이다. 코로나19에 대한 정부 브리핑에 수어통역사가 등장하자 일부 SNS를 비롯한 커뮤니티에서는 "왜 수화(어)통역사들은 마스크를 끼지 않나요?"라며 "마스크를 끼지 않아 감염에 노출될까 걱정된다"라는 우려를 보냈다.

이처럼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생존에 필수적인 정보가 차별 없이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중랑구 봉우재로 143 3층
  • 대표전화 : 02-923-6864
  • 팩스 : 02-927-3098
  • 제보, 문의 : kesnewspaper2@gmail.com
  • 주간신문
  • 제호 : 한국연예스포츠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10616
  • 등록일 : 2009-09-09
  • 발행일 : 2000-05-25
  • 인터넷신문
  • 제호 : 한국연예스포츠신문TV
  • 등록번호 : 서울 아 05031
  • 등록일 : 2018-03-23
  • 발행일 : 2018-03-26
  • 발행인 : 박범석
  • 편집인 : 박범석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범성
  • 한국연예스포츠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한국연예스포츠신문.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