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학교는 ①] 잘 봐~ 언니들 학교 간다
[지금 우리 학교는 ①] 잘 봐~ 언니들 학교 간다
  • 정예은 기자
  • 승인 2022.03.21 11: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뚜기 키즈 인서 씨 "학생들의 열정이 남달라"

늦은 배움이라 더 설렌다는 정순 씨 "마음이 항상 붕붕 떠 다녀"

[한국연예스포츠신문 = 정예은 기자] 매주 일요일 오전 9, 영등포구 도림동에 위치한 작은 학교에서 종이 울린다. 남들보다 늦었지만 그만큼 더 큰 기쁨을 느낀다는 학생들과, 그런 학생들을 만나 최고의 보람을 느낀다는 선생님들이 만들어가는 작은 학교, ‘오뚜기 일요학교의 이야기다. 이름에서도 엿볼 수 있듯 이 학교는 일요일에만 문을 연다. 평일엔 각자의 사정과 생업으로 배움을 이어갈 수 없는 이들을 배려해 일요일만 열게 된 걸까

출처 : 직접 촬영
출처 : 직접 촬영

오전 11. 제법 가파른 계단을 올라 건물 3층에 도착하면 정겨운 간판이 우리를 맞이한다. 1981.1.18.이라는 숫자가 적힌 오뚜기 학교의 현판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일요학교의 교사들이 업무를 보는 작은 교무실과 중등반-고등반으로 나뉜 2개의 교실이 있다. 우리가 봐왔던 널찍한 교무실과 전자 칠판이 설치된 교실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프린터기와 컴퓨터는 오직 1, 교사들도 차례를 기다려서 사용해야 한다. 교실엔 전자 칠판 대신 화이트보드와 tv 모니터가 자리하고 있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민속촌에서나 봤다는 철제 책걸상 세트까지 놓여 있어 어딘지 정겨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교사들과 선생들은 왜 이 학교여야만 했을까. 그것도 무급 봉사인 일요학교 교사직이 왜 그들에게 필요했을까.

출처 : 직접 촬영
출처 : 직접 촬영

일요학교 2개월 차 역사교사 박인서 씨는 오뚜기 키즈.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일요학교를 졸업하셨고, 아버지는 대학을 졸업한 후 다시 일요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셨다. 그런 인서씨에게 일요학교는 더욱 특별한 공간이다. 그가 일요학교 교사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도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그는 제가 일요학교의 교사가 되는 게 아버지의 평생소원이었다. 아버지가 일요학교 교사를 꼭 해야 한다고 강력 추천하셨다”라고 설명했다. 4개월 차가 된 과학교사 변도균 씨는 야간학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중 일요학교를 찾게 됐다. 학생들의 수고했다’라는 한 마디가 원동력이라 말한 그는 검정고시를 도와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드리고 싶다. 매주 수업을 할 때 과학과 관련된 기사자료를 가져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라고 밝혔다. 학생들 못지않은 교사들의 열정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초중고 정규 교육과정과 대학 교육까지 모두 받았던 교사들은 그동안 다녔던 학교와 일요학교는 차원이 다르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나 대학 시절 학원과 과외 일을 하며 평범한 학생들을 많이 만나 봤다는 도균 씨는 일요학교 학생들은 배움에 대한 진정성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깊다. 쉬는 시간에 자료를 뽑아드리겠다 하고 깜빡하기라도 하면 대번에 당장 내놓으라며 재촉하신다. 하나라도 더 가져가고 배워가려고 하실 때 확실히 다르다는 걸 느낀다”라며 감탄했다. 인서 씨 역시 일요학교 학생들은 대부분의 학생들과 열정이 다르다. 요즘 학생들을 보면 초중고등학교는 의무고, 대학교도 다들 가니까 따라가는 경향이 있는데 이 학교는 그렇지 않다. 듣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듣는 것이라며 이 학교의 수업은 학생들이 이끌어 간다. 계속 질문하고, 궁금해하고, 교사들을 괴롭히는 게 너무 좋았다”라고 말했다.

출처 : 직접 촬영
출처 : 직접 촬영

배움을 중단했던, 중단해야만 했던 학생들이 일요학교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딴다. 모두가 쉬고싶어하는 일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학교에서 열정을 불태우는 이들은 어떤 마음일까. 검정고시 붙는 날 만세 한 번 불러보고 싶다는 언니들 정순(가명)씨와 순자(가명)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집안 생계를 뒷받침하느라 50년 만에 학교를 다시 찾았다는 정순 씨는 한을 풀기 위해 학교를 찾아왔다고 했다. 그는 몸도 건강하고, 생각도 빠릿하게 잘하는데 못 배웠다는 거 때문에 자꾸 움츠러든다. 나쁜 짓을 해서 못 배운 건 아닌데도 내 무식함이 들킬까 봐 그랬다. 그래서 이제는 그 한을 좀 풀고 싶다”라고 털어놨다. 언제 학교를 그만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순자 씨는 예전부터 다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면서도 집안 식구들을 생각해서 내가 희생하면 되겠지 했다. 하지만 남편이 이런 마음을 알았는지 평생학습관에 영어 배우는 걸 신청해 주었다. 그걸 열심히 다니다 보니까 공부에 흥미가 생겨서 여기까지 오게 됐다"라며 "일요일은 내가 집안일 하고 나올 때 남편이 늦으면 안 되니까 빨리 가라고 협조를 너무 잘해서 더 재미있다”라며 등교 사유를 밝히며 웃었다.

조금은 늦은 공부가 힘든 적은 없었을까. 공부가 어려워서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을까 물었다. 순자 씨와 정순 씨 모두 입을 모아 마음이 항상 즐겁다고 손사래를 쳤다. 정순 씨는 공부하러 오면 너무 친절하게 꼼꼼히 알려 주신다. 급해서 선생님들 말 끊고 질문하고, 귀찮게 많이 하기도 했다. 바쁜 세상에 다 자기 일 제쳐놓고 와서 봉사해 주는 게 너무 복 받았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억울한 마음에 남들 원망도 많이 했는데, 이제는 내가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으니까 자신감도 막 생긴다”라고 좋아했다. 그들에게 일요학교는 사랑이 가득한 집과 같다고 했다. 사랑 아니고서는 선생님들이 이렇게 봉사할 수도 없고, 학생들이 이렇게 뿌듯하게 학교를 다니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출처 : 직접 촬영
출처 : 직접 촬영

자신들과는 달리 꾸준히 학교를 다니는 자녀를 보며 행복을 느꼈다는 두 여자들은 이제 일요일이면 그토록 간절했던 학교에 다닌다. 자녀 뒷바라지, 집안 살림, 생업 때문에 뒤로 미뤄뒀던 공부를 어렵게 꺼내 소중이 펼쳐냈다. 못 배웠다는 이유로 움츠려들고 자신 없어했던 지난 날은 뒤로한 사람들은 꿈을 꾼다. 검정고시 자격증을 가지고 대학에 진학해 더 공부해 보고 싶다는 내일을 꿈꾸고, 마음을 붕붕 떠다니게 만드는 일요일을 꿈꾼다. 언니들의 일요일에 계속 종소리가 울리길 소망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중랑구 봉우재로 143 3층
  • 대표전화 : 02-923-6864
  • 팩스 : 02-927-3098
  • 제보, 문의 : kesnewspaper2@gmail.com
  • 주간신문
  • 제호 : 한국연예스포츠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10616
  • 등록일 : 2009-09-09
  • 발행일 : 2000-05-25
  • 인터넷신문
  • 제호 : 한국연예스포츠신문TV
  • 등록번호 : 서울 아 05031
  • 등록일 : 2018-03-23
  • 발행일 : 2018-03-26
  • 발행인 : 박범석
  • 편집인 : 박범석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범성
  • 한국연예스포츠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한국연예스포츠신문.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