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선생님도 저희 반을 포기했어요” 그곳엔 교권도 학생 인권도 없었다
[인터뷰] “선생님도 저희 반을 포기했어요” 그곳엔 교권도 학생 인권도 없었다
  • 김도영 기자
  • 승인 2022.12.25 15: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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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욕설·소음에 고통받아... 학습권 침해는 ‘일상’
권위 잃은 교사와 방치하는 학교에 어른에 대한 불신 커져
폭력으로 물든 교실... “탈 없는 학교생활 위해선 순응만이 답”

[한국연예스포츠신문 = 김도영 기자]

“아직도 선생님께 욕하고 소리치던 그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소름이 끼쳐요.”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A씨는 5년 전의 고등학교 생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A씨는 인터뷰 중간중간 잊고 싶은 기억이 떠오르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기도,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고개를 좌우로 흔들기도 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와 조금만 비슷한 상황이 연상되면 도망치고 싶은 생각부터 든다는 그녀. 그녀의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은 믿기 힘들 정도로 비상식적이었으며 기괴하기까지 했다. A씨는 교권 추락의 현장 속 주목받지 못한 또 다른 피해자이다.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교권 침해가 해마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가운데 교육계 안팎에선 교권 보호 대책에 대한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지난 8월 26일 충남 홍성의 한 중학교에서 남학생이 교단 위에 드러누워 수업 중인 교사를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듯한 영상이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 퍼지며 교권 침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영상을 접한 사람들은 교사는 피해자, 학생은 가해자로 규정하며 해당 문제에 대해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근 몇 년간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며 학생 인권이 과도하게 강조되다 보니 교권은 상대적으로 약화했다는 지적이다. 그 기저에는 교권과 학생 인권을 분리해 상호 배타적인 관계로 간주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러나 정말 교권 추락의 현실 속 학생이라는 이름은 가해자이기만 할까. 한국연예스포츠신문이 취재한 결과, 교권 침해 현장에는 당사자인 피해 교사 이외에도 고통받는 또 다른 피해자들이 존재했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교권 침해 현장에 적나라하게 노출돼 있었던 A(22)씨와 B(22)씨를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어봤다.

 


◆ 일상이 되어버린 교권 침해

B씨는 충남 홍성 사건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교권 침해 문제는 이전부터 제기되어 왔던 문제였다.”라며 특별히 충격적인 일이 아니라는 듯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이미 교권 침해는 그들에게 ‘보통의 일’이었다.

“머리가 벗겨진 할아버지 선생님께서 수업을 하실 때였어요. 한 학우가 선생님 몰래 일어서서 선생님의 머리를 가리키며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그걸 본 반 학우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렸어요. 수업 중인 선생님을 앞에 두고 자리에서 일어나 크고 시끄러운 목소리로 수업 내내 대화를 나누기도 했죠.”

교권이 무너진 교실 안 풍경은 예상보다 훨씬 참혹했다. 구체적으로 기억나는 장면이 있냐는 기자의 물음에 B씨는 이렇게 답했다. 이어 “선생님은 드세고 폭력적인 학생들을 상대할 수 없어 수업에 대한 비방에도 아무런 조치 없이 수업을 이어나가셨다.”라고 말했다.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학생이 교사를 무시하며 수업을 방해하는 건 예삿일이었다. A씨는 “당시 같은 반 남학우들은 수업 중인 선생님의 말을 자르고 무시하는 발언을 많이 했다. 수업에 방해가 돼 선생님이 모르는 척 넘어가면 ‘왜 내 말 무시하냐’라며 선생님을 압박했다.”라고 말했다. 교사가 교실 안에서 스승으로서의 권위를 완전히 상실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들 모두 학생이 교사에게 욕하고 소리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 무자비한 폭력에 방치된 아이들

교사의 권위 상실은 곧바로 무고한 학생들에 대한 피해로 이어졌다. 교사가 학생을 통제하지 못하니 여타 학생들은 거친 욕설과 폭력적인 장면들에 아무런 보호 없이 노출돼야 했다.

“저는 안전한 교실에 있을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항상 소음과 욕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난무하는 교실에 있었어요. 선생님이 제재를 하지 못하니 가해 학생들은 점점 더 막 나가기 시작했고 교실 안은 고성과 욕설로 물들었죠. 이어폰을 껴도 소음이 가려지지 않는 지경이었어요.”

학생들이 받는 피해는 심각했다. 가해 학생들이 분위기를 흐려 수업 진도를 제대로 못 나가는 일은 수두룩했다. 학습권과 안전권 침해는 물론, 하루 종일 고성과 욕설이 난무하는 비정상적인 교실 안에서 심리적 고통을 받아야 했다. A씨는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무기력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곳엔 교권도, 학생 인권도 없었다.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선생님께 폭력성을 표출하는 학생들을 그 누구도 멈추려 하지 않았어요. 그저 상황들을 방치하는 학교 시스템을 보며 어른에 대한 불신은 극에 치달았죠.”

B씨는 권위와 자존감을 잃은 선생님들과 상황을 알고도 방임하는 학교를 보며 어른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고 고백했다. B씨는 “선생님은 해당 학생들에게 제재를 가했을 때 돌아올 한 단계 높은 폭력적인 말과 행동, 피해를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상대를 하지 않았고 그저 상황을 방치했다.”라며 “선생님들은 수업 한 시간만 참으면 그만이지만 하루 종일 수업을 함께 듣고 생활해야 하는 우리는 원망감과 답답함을 가질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A씨와 B씨는 인터뷰 중 공통적으로 ‘순응’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교사조차 통제할 수 없는 교실 안에서 무력함을 느꼈던 이들은 폭력적인 상황에 순응하게 됐다고 말했다. A씨는 “그런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다 보니 그냥 일상생활이 되어 점점 무뎌졌다.”라고 했고 B씨는 “폭력성에 무딘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지만 점차 충격의 정도가 줄어들었다.”라고 말했다. 기본과 상식의 집약체인 학교가 폭력과 비상식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 교권이 살아야 학생 인권도 산다

이들의 끔찍했던 고등학교 시절은 성인이 되어서도 영향을 줬다. A씨는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등학교 2학년을 떠올리게 하는 특정 행동이나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심각한 거부반응이 생긴다고 말했다. 사람에 대한 편견과 불신도 심해졌다.

B씨는 “고등학교 내내 교권 침해 현장을 경험하며 폭력에 익숙해졌다. 가치관을 확립해나가는 10대 청소년들이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 교권 침해 현장을 보며 폭력을 폭력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게 될 상황이 두렵다.”라며 여타 학생들이 폭력에 대한 기준을 왜곡해서 적립할 것을 우려했다.


“선생님도 포기한 반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A씨의 반은 ‘선생님도 포기한 반’으로 학교 안에서 소문이 자자했다고 한다. 교사도 포기한 반에서 학생 인권이 제대로 보장될 리 없었다. 비정상을 비정상이라고 말할 수 없는 그 교실 안에선 교권과 함께 학생 인권도 추락했다.

끝으로 B씨는 “더 이상 교권 침해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 교권 침해를 당했을 때 교사의 신원을 보장할 수 있는 믿을만한 매뉴얼이 필요하다.”라며 “교사가 학교 내 폭력을 신고하고 대처하는 매뉴얼을 확립해 폭력 상황에 객관적인 절차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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