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나운서·쇼호스트 준비생들의 '등대' 김도헌 아나운서를 만나다.
[인터뷰] 아나운서·쇼호스트 준비생들의 '등대' 김도헌 아나운서를 만나다.
  • 황웅재 기자
  • 승인 2023.05.01 1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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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헌 아나운서를 만나보았다. 전주MBC와 연합뉴스TV등 지상파에서 이미 자신의 커리어를 증명했고 이제는 자신의 어려웠던 준비생 시절을 떠올리며 자신과 같은 아나운서를 꿈꾸는 수많은 청년들에게 등대와도 같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있는 사람이었다.

[블랙스완스피치]김도헌 원장, 아나운서, 쇼호스트 / 제공 = 블랙스완스피치
[블랙스완스피치]김도헌 원장, 아나운서, 쇼호스트 / 제공 = 블랙스완스피치

Q. 근황이 궁금하다.

 A. 2021년 1월 1일에 블랙스완스피치를 정식 개원했어요. 지금 2년 반정도 지난 것 같은데 지금은 150명 정도의 아나운서와 쇼호스트를 배출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라이브커머스 쇼호스트까지 하고 있는데, 2023년에 들어서 TV공채 쇼호스트에 대한 반이 개설되었어요. 그래서 여기 옆에 계신 한태리 쇼호스트도 합류해서 활동하고 있는데, 이게 굉장히 큰 붐을 일으켰습니다. 저는 계속해오던 일이었는데, 10년 전에 제가 아나운서 학원에 다닐 때 ‘학원에 이게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것들을 제가 다 하고 있거든요. 예를 들어 현장 동행 수업이라던지, 직접 가서 선생님이 인도해주고, 사진을 찍을 때 이미지도 점검해주고, 하는 것들을 하고 있어요. 2년 반 동안 최초로, 계속해서 해오고 있고, 원래 해오던 일인데, 공채 쇼호스트 1기 친구들과 하게 되면서 후기로 많이 알려지게 되면서 다른 쇼호스트 준비생들의 문의가 와서 현재 3기까지 준비가 완료된 상태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블랙스완스피치를 운영하면서 미인대회 후원사로 들어가 활약 한다던지, 각종 MC를 맡을 때에 학생들을 써서, 학생들을 교육하면서 행사의 MC로도 도약할 수 있게끔 도와주고 있습니다. 또 라이브커머스에서는 블랙스완라이브라는 라이브커머스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투트랙 체재인데, 모바일쇼호스트라던지, TV공채쇼호스트를 준비하고있는 학생들이게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경험을 쌓는게 더 중요하거든요. 저희는 전문 PD 두 분과 작가분 한 분, 그리고 제가 전적으로 다 맡아서 학생들에게 실전 경험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블랙스완스피치]
[블랙스완스피치]

 

Q. 왜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나?

 A. 사실 계기는 조금 웃겨요. 제가 재수를 할 때 제 친구가 연예인이에요. 송중기라고, 원래는 중기랑 제가 성균관대 사회학과까지 같이 응시를 했어요. 같은 고사실에서 논술까지 보고 내려왔었는데, 중기는 붙고 저는 떨어졌어요. 저는 교대를 가게 되었는데,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려고 공부를 했는데 어떻게 살지 인생이 보였었어요. 그러다 중기가 주말 연속극에 아들 역할로 나온 적이 있었어요. 그걸 보고는 제가 ‘이건 좀 아니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지? 뭔가를 잘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막연히 TV에 나가야겠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때 기자도, 배우도 아니었던 것 같았어요. 그러다 그 시그널이 있어요. ‘빰빠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를 듣고 아 저거다. 그다음에 곧바로 집에 전화해서 ‘나는 선생님이 아니라 아나운서를 준비해 보겠다’ 그랬더니 어머니께서 ‘왜 그러냐’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인생이라는 게 희노애락이 있어야되고, 성공도 있고 실패도 있어야하는데, 나는 그런 게 없는 것 같다’ 제 꿈은 직업이 아니에요. 제 직업은 좋은 아들, 착한 남편, 좋은 아빠 동사형이예요. 제 꿈을 이루려면 좋은 아빠가 되어야 하는데, 초등학교 교사였으면 아들, 딸에게 공무원 하라는 말밖에 못 할 것 같았어요. 그런데 제가 만약 아나운서가 돼서 실패할 수도, 성공할 수도 있는데 성공을 하게 되면 ~해서 너희 엄마를 만나고, ~한 게 ~될 수도 있으니 미리 준비해야 한다. 실패를 했을 때는 ~하는 와중에 너희 엄마를 만났다. 인생은 실전이다(웃음) 이럴 수도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한번 사는 건데 내 가슴이 뛰고, 그런 삶을 살아봐야 하지 않겠냐. 20대 청춘인데. 그래서 그렇게 아나운서를 준비하게 되었고, 준비과정 속에서 굉장히 긍정적이었던 것 같아요. 붙건 떨어지건 둘 중 하나다. 그리고 저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움직이는 성격이었어요. 열심히 했다기보다는 오늘 뉴스를 몇 개 읽었다.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까, 시험장에 갔을 때도 조금씩 솔직한 제 모습이 나오고, 진실 된 제 모습이 나오면서 면접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감사하게도 MC공채 라던지 연합뉴스TV 그리고 KNN도 합격했었어요. KBSN, 매일경제TV 사실 이 중에서 하나만 붙기도 어려웠는데, 다 붙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롯데홈쇼핑까지 공채 쇼호스트로서 일을 했고, 이제는 프리랜서로서 사업을 하고 있죠. 열심히 살았습니다(웃음).

 

Q. 아나운서, 쇼호스트의 매력은?

 A. 아나운서는 제가 좋았을 때가 연합뉴스 저녁 8시 뉴스를 했을 때가 기억에 남아요. 제가 좋아하는 손석희 선배와 동시간에 진행을 했고, 손석희 선배는 더이상 뉴스를 안 하시잖아요. 동시간에 뉴스를 진행했던 남자가 몇 되지 않으니, 그중에 한 명이 저라는 사실이 굉장히 뿌듯하기도 했고. 뉴스를 진행한다는 게 정말 좋았던 것 같아요. 저는 정치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그것을 제소리로 전달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큰 뿌듯함을 느꼈었던 것 같고요. 또 하나는 전주MBC에 내려가서 했던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생방송 뷰’라는 매거진 프로그램인데, 제가 마지막 방송 때 김도헌 아나운서에게 하고 싶은 말 LTE라고 해서 문자나 영상을 보내는 게 있었는데, 도민 여러분들이 김도헌 아나운서 고생하셨고 서울에서도 봬요. 라고 말씀해주셨는데, 만삭이셨던 분이 애 낳고 보낸 문자도 있고 사진 보내주셨고 그러셨는데, 제가 생방송 때 울었거든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내 사람 살아가는 그런 것을 한다는 것에 보람이 컸던 것 같고요. 쇼호스트는 나이가 먹을수록 숙성되는 느낌? 그러니까 김치와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 젊은 사람들만 TV에 나오는 게 아니라 나이가 먹을수록 가구도 사고, 아파트도 이전할 수 있고 가전도 그렇고, 먹는 음식도, 옷도 달라지잖아요. 그런 것들을 내가 같이 나이를 먹는데, 함께 봐주시는 시청자분들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내가 그 제품을 통해 느꼈던 가치, 커피를 마시면서 느꼈던 행복함 포만감,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의 짜릿함, 좋은 가전제품을 했을 때의 편안함 가구에서 느꼈던 안락함. 이런 것들을 그분들과 함께 공감하면서 전달하는 거잖아요? 내가 느꼈던 행복을 여러분도 느꼈으면 좋겠어요. 라고 하는 것들. 그런 것들에서 보람이 있는 것 같아요. 보다 손에 닿는 것? 실감나는 것?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는 시간이 지나도 더 숙성되고 깊이가 있어지는 직업이라 나름의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Q. 방송계 아나운서로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까지 어떤 힘든 순간이 있었는지?

 A. 많이 힘들었죠. 밖에 보시면 12년 전에 샀던 구두가 있어요. 뒷 축이 다 닳아있고, 안에는 곰팡이가 슬어있고, 굽이 걷지 못할 정도로 많이 닳아있어요. 저 구두를 제가 12년 전에, 그러니까 제가 27살 때 명동 롯데백화점에서 구두상품권으로 퉁치기 해서 산 구두인데, 헤리티지 리갈이라는 구두를 성인이 돼서 처음 산 거예요. 저 구두를 12년을 신었어요. 제 나름대로 징크스가 있었어요. 그래서 저 구두와 제가 늘 매는 타이가 있어요. 그 타이와 구두를 신으면서 시험을 봤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가 노력해왔던 것들을 보여주는 게 저 구두라고 생각해요. 정말 힘들었어요. 왜냐하면 2등도 집에 가야하기 때문에요. 그런데 2등을 세 번, 네 번 할 수도 있어요. 그런 직업이기 때문에 너무 힘들었는데, 그 광경을 넘으면 정말 멋진 풍경이 펼쳐져 있어요. 정상이 보이지 않지만, 안개가 껴있는 길을 계속 올라가는 느낌이거든요. 한라산을 올라갔을 때처럼. 하지만 정상에 올라 그 전경을 바라보면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이런 직업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보람이 큽니다. 앞에 울고 힘들었던 도전 같은 것들이 기억에 남아요. 그렇게 해서 오늘날의 제소리가 나왔던 것이고, 그런 노력 들이 있었기 때문에 면접장에 갔을 때 정말 붙고 싶고, 가고 싶고, 내가 하고자 했던 마음이 잘 전달되었던 것 같아요. 번외긴 한데, 제가 성장했던 계기 중 하나가 있어요. 14년 세월호 참사 때 진도에 내려가서 봉사활동을 했었어요. 제가 실내 체육관에서 물걸레질만 했는데, 정말 지옥 같은 장면이었어요. 정면에서는 보도 채널 앵커 목소리만 나오고, 어머님 아버님들은 너무 우셔서 쇳소리가 나요. 그리고 애들이 도시락을 반납하려고 하는데, 안 먹은 거예요. 안 들어가니까. 그러다가 팽목함을 보고 집에 가려고 하는데, 어머니 한 분이 저를 붙잡고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어 보시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그냥 아나운서 준비생입니다. 라고 했더니 그분이 제 손을 잡고 꼭 좋은 아나운서 돼서 우리 같은 어려운 사람들을 대변해주세요. 그런데 저는 변호사가 아니잖아요. 그래도 어머님의 마음을 알 것 같은 거예요. 그때부터 달라진 것 같아요. 저는 아무것도 아니었잖아요. 그냥 봉사활동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래서 버스 타고 돌아오는 내내 울었었어요. 그해에 월드컵이 열렸었어요. 9월, 10월이 되면 이 일이 잊혀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들이나 딸 주려고 치킨을 사려고 하다가 아 이제 없구나. 하면서 돌아가시는 그 뒷모습이 생각나서 너무 울었던 기억이 나요. 그 일이 저를 더 성숙하게 했었던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 평범한 사람들이 많잖아요. 아나운서는 그분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저는 생각해요. 저 같은 평범한 사람이 아나운서가 돼서, 저처럼 보통 사람도 있어야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공감해줄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버텼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결과가 나온 것 같아요.

12년을 김도헌 아나운서와 함께한 구두
12년동안 김도헌 아나운서와 함께한 구두

Q. 취미가 어떻게 되나요?

 A. 저는 요즘에는 사실 정말 바빠요. 너무 바빠서 취미가 일과 연관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지금은 너무 하고 싶은 게 뭐냐면, 플랫폼이 뉴미디어를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시대잖아요. 그래서 현재는 제가 취미라기보다 준비를 많이 하고 있는 게, 숏터뷰라고 해서 학생이나 아나운서, 쇼호스트와 함께 짧게 3분 정도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들을 유튜브에 업로드하고 있고요. 또 제가 운영 중인 김도헌의보이스트레이닝이라는 온라인 강의가 있어요. 그걸 리뉴얼 할 예정이고, 같은 이름으로 운영 중인 네이버카페에서 학생들에게 모닝루틴챌린지라고 해서 호흡 발성 습관을 만들어주고, 서평을 썼을 때 응원도 해주고. 1등 한 사람에게 치킨도 보내주고. 그렇게 하면서 같이 격려하면서 방송인 후배들을 양성하고 일반인 분들에게는 태어났을 때부터 좋았던 목소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잘못된 호흡법 이라던지, 자세 이런 것들로 인해 감춰진 좋은 목소리를 꺼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쉴 때는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는 것 위주로 휴식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두 번 교보문고에 가는데,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베스트셀러나 경제학, 인문학책을 7~8권을 사서 무료로 빌려볼 수 있게끔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저도 먼저 읽고 같이 읽으면서 머리도 식히고 있습니다.

 

Q. 잘생김의 비결이 있나요?

 A. 글쎄요(웃음) 저는 제가 미남이라기 보다는 호감형이라고 생각해요. 잘 웃고 그렇게 하는데, 제가 생각했을 때 제 기준에서는 가정교육이지 않을까 싶어요. 엄마, 아빠에게 배운 게 있기 때문에 사람을 대할 때 사람으로 대하고, 계산하지 않고 먼저 존중하고, 존중받을 줄도 알아야 하고 거절할 때는 거절할 줄도 알아야 하고, 웃을 때는 진심으로 웃을 줄 알고. 그런 것들이 얼굴에 드러나는 것 같아요. 어떤 친구를 보면 얼굴이라는 게 ‘잘생겼다’라는 기준이 주관적이라고 보거든요. 보통 피부가 좋거나 코가 오똑하다는 것처럼 객관적으로 보거든요. 제 주관적인 기준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엄마 아빠의 따듯한 미소와 제가 지금까지 거쳐온 힘든 과정들에서 미움, 질투나 시기같은 감정보다는 배려나 도전 용기와 같은 마음이 가득 차 있으니까, 그런 감정들이 얼굴로 밖으로 나와서인 것 같아요.

 

Q. 생방송 도중 기억에 남는 사고가 있다면?

 A. LTE라고 해서 MBC에 있을 때, 현장에 직접 연결하는 거예요. 장비가 외부에 있다 보니까 끊길 수가 있잖아요. 연결이 끊어지면 멘트를 채워야 하는데, 거기에 맞게끔 준비된 멘트를 바탕으로 해서 연결이 원활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하면서 방송을 풀어주는 거죠. 쇼호스트 관련해서는 쪽갈비를 판매하는데, 매운 쪽갈비를 굽다가 보니, 거기에 식용유를 뿌려서 구워봤는데, 방송 시작 전에 테스트를 하지 않고 해본 건데, 시작하고 나니 연기가 너무 많이 올라와서 완전히 정리하고 맵지 않은 버전으로 구워서 진행했는데, 그때 정말 아차 싶었던 기억이 남는 것 같습니다.

 

Q.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은 ‘나’는 무엇인가요?

 A. 저는 조금 간단한 것 같아요. 제가 내년이면 마흔인데, 불혹이라고 하잖아요?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그런데 저는 많이 흔들리고 싶어요. 흔들리되, 뿌리가 굳건한 사람. 그 뿌리가 말씀드렸던 것처럼. 부모님께 좋은 가정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 가지고 있는 따듯한 마음을 제 주위에 있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고. 또 선한 영향력을 행동으로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작은 행동이지만, 그 행동을 보고 누군가가 나도 해볼까? 하게 된다면 제 인생이 굉장히 의미 있는 인생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선한 영향력을 끼치면서 많이 부딪히고 실패도 하고 성공도 하고 하면서도 뿌리가 굳건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열정 부자 입니다.(웃음)

 

Q. 남은 23년도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는지?

 A. 저는 명확해요. 블랙스완스피치를 세우게 된 게, 블랙스완이라는 뜻 자체가 경제용어로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일어났을 때를 뜻합니다. 이게 사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게, 아나운서나 쇼호스트 되는 게 정말 어려워요. 저도 아나운서 준비 생활을 2년 정도 했고, 약 2000만원 정도를 썼어요. 그런데 학원을 다니다 보면 아쉬운 부분이 많았어요. 보통 아나운서, 쇼호스트라고 하면 백조같은 사람들 있잖아요. 좋은 학교, 부잣집 아들, 딸 좋은 학벌. 꼭 그런 사람들만 아나운서가 되고 쇼호스트가 되어야 하는 건가. 흙이 좀 묻어도 거무튀튀하더라도, 미운오리새끼처럼 학원에서 관심을 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한명 한명이 한 가정에서는 어머니, 아버지의 보물이고 자부심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블랙스완의 대장이 돼서 이 친구들이 훨훨 날 수 있게끔 도와주고 싶어요. 흑조면 어떠냐 이거예요. 조금 검어도 멋지게 날아오를 수 있다. 그걸 평범했던 제가 먼저 보여줬었고, 그걸 공감할 수 있으니까. 제가 평범했는데 노력했고 이룬 사람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한테 정말 와닿는 교육을 할 수가 있어요.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해봤으니까. 지하철을 타고, 머리 협찬도 못 받아서 겨드랑이에 땀 차면서 뻘뻘대며 프로필 찍고. 왕복 2시간 버스를 타고 결혼식 사회 4만원 받아가면서 그렇게 해서 드라이도 하고. 각 지역에 가서 최종 시험까지 올라갔다 떨어져서 펑펑 울어보기도 하고. 제가 10년 동안 184군데 시험을 봤어요. 아마 전국에서 공채 시험을 많이 본 사람 자체가 저밖에 없지 않을까 싶어요. 원장 중에서는 저밖에 없을 거예요. 제가 올해 꼭 이루고 싶은 것은 제가 아직 열정이 가득하고 체력이 있고, 에너지가 있을 때 저와 같은 10년 전의 도헌이와 같은 청년들이 많이 있을거란 말이에요. 원룸에서, 학원에서 아나운서 할거야 쇼호스트 할 거야 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이 친구들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주고 같이 걸어 가주고 싶은 거예요. 적어도 올 1년만큼은요. 사람은 다 변합니다. 저도 변할 거예요. 저도 돈 많이 벌고 싶고요. 좋은 아파트에 살고 싶고, 포르쉐 타고 싶습니다. 그런데 적어도 ‘나 때는’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나 때는 그랬다. 그러니까 저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어요. 나 때는 이라는 말을 하려면 그때는 정말 그렇게 살아야 해요. 저는 평생 여러분께 교육자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이런 말은 못 하겠습니다. 하나의 평범한 사람으로서. 하지만 우리 이걸 보고 있는 아나운서나 쇼호스트 준비생이라고 한다면, 확신할 수 있어요. 적어도 올 해 만큼은 제 진심을 담아서 한 명이라도 제가 그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 꿈의 가치에 동참하고, 같이 울고, 같이 웃어줄 자신이 있어요. 그 친구가 노력만 한다면, 날려고만 한다면, 그 나는 방법을 옆에서 같이 이끌어줄 일년을 보내고 싶습니다.

 

Q. 김도헌 아나운서를 사랑하고, 응원해주신 팬, 지인분들에게 한마디

 A. 저는 이제 프리랜서가 된 지 3년이 되었어요. 항상 직장인 생활을 하고, 그러다 보니 제가 홀로 나와서 하는 게 정말 힘들었는데, 이제 좋은 PD님들도 만나고, 학생이자 동료인 쇼호스트, 아나운서분들과 함께 하니까, 전 더없이 매일매일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그러나 거듭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은 게 뭐냐면. 누군가는 저의 이런 모습이 정말 가식적이다. 라고 느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도 적어도 올 한해, 작년도 그렇고. 부족하지만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채워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것에 대해서 많은분들이 응원해주시고 격려해주시는 분들이 계신 데, 그 응원과 격려에 에너지를 받아서 작더라도 선한 영향력을 말로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런 온기가 한 명, 열명 이라도 전파가 돼서 우리나라가 사람이 살아갈 때 조금 더 따듯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사람이 보통 일년에 웃는 시간이 한시간도 안된다는 통계가 있다고 해요. 저는 저로 하여금 그 시간이 5초라도 늘었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저를 보고, 응원해주시는 분들, 함께해주시는 분들이 웃을 수 있게, 밝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인생은 한 번 뿐이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모두 행복하게, 진실 되게 그렇게 살아요. :)

[블랙스완스피치]김도헌 아나운서
[블랙스완스피치]김도헌 원장, 아나운서, 쇼호스트 / 제공 = 블랙스완스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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