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최고의 화제 브레이브걸스 ‘롤린(Rollin')’
2010년부터 다시 시작한 역주행
명과 암에도 무명 가수들에겐 소중한 기적
2021년 첫 역주행 곡, 브레이브걸스 ‘롤린(Rollin')’이 음원뿐 아니라 예능 및 방송계에서도 화제다.
역주행이란, 활동이 종료되거나 부족한 인기 등의 이유로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곡이 재조명되어 음원 차트나 가요프로 순위 상승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브레이브걸스 역시 얼마 전까지 해체를 앞두었던 걸그룹이었지만, 댓글 모음 전문 유튜버가 유튜브에 올린 브레이브걸스의 ‘롤린 (Rollin')’이 22일 기준 약 1,220만 조회 수를 기록하며 역주행에 성공했다. 해당 영상은 브레이브걸스의 군대 위문 공연 당시 영상을 다시 재구성하였다.
브레이브걸스의 ‘롤린 (Rollin')’은 빠른 입소문을 통해 음원 사이트 벅스 차트 1위를 시작으로 모든 음원차트 1위를 석권했으며, 14일 방송된 SBS 음악 방송 ‘인기가요’에서도 1위를 겨며 쥐었다. 당시 브레이브걸스는 “다시는 무대에 서지 못할 줄 알았다.” 며 눈물의 소감을 전했다.
이후 브레이브걸스는 ‘유희열의 스케치북’, ‘유 퀴즈’ 등 예능 및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해체를 고려했단 사실이 무색하리만큼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낮은 인지도에도 꾸준한 활동과 위문 공연, 행사 등으로 결국 1위를 차지한 브레이브걸스의 사례만큼 역주행 자체에 대한 관심도 크게 늘고 있다. 과연 역주행이란 언제부터 시작되었고, 최근에 특히 더 화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의 역주행 음원
과거 1990년대 음원 시장에서 역주행은 당연한 절차 중 하나였다. 특히 홍보와 차트 제도가 현재의 활발한 인터넷과 음원 사이트 경쟁과는 달랐기 때문에 대다수의 곡이 천천히 입소문을 타며 차트 상위권을 차지했고, 차트 순위 하락 역시 지금보다 훨씬 속도가 느렸다.
실제로 1992년 발매되었던 가수 김건모의 앨범 <첫인상>이 발매 1년 만에 골든 컵을 수상하기도 했고, 1995년 발매된 가수 설운도의 <쌈바의 연인>이 1년 넘게 차트 상위권을 차지하는 등 차트 변화도 극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며 기존 가요 무대가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활동 후 잠적, 공백기를 가진 후 다시 컴백하는 지금 가요무대에서 흔한 ‘휴식기’ 시스템을 시작한 첫 그룹이다. 휴식기를 가지기 위해 서태지와 아이들은 짧은 기간 동안 많은 홍보와 활동을 통해 차트 상위권과 인기를 휩쓸었고, 이후 모든 활동을 중단하는 '휴식기'가 되면 다시 빠르게 차트에서 내려왔다.
또한, 아이돌 팬덤 및 대형 기획사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대형 기획사는 앨범 발매 직후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기 시작했고, 음악이 아닌 가수를 보고 앨범을 구매하는 강력한 팬덤이 생겨났다. 따라서 입소문을 통해 음악이 역주행하는 경우가 줄어들고, 1~2달 안에 성공하지 못하면 사라지는 현실이 시작되었다.
심지어 2000년대에는 인터넷 문화가 발전하고 누구나 음원을 공개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덕분에 음원이 발매되자마자 인터넷을 통해 대다수의 음원 소비자들이 음악을 확인할 수 있었고, 따라서 발매 직후 인기를 얻지 못하면 새로 등장한 곡들로 인해 다시 인기를 얻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렇게 사라지는 듯했던 역주행 신화는 2010년대 오디션, 복고 문화, 유튜브의 유행으로 다시 등장했다.
다시 시작된 역주행
2009년부터 방영된 MNET의 ‘슈퍼스타 K’는 대한민국 가요계에 본격 오디션과 경연 열풍을 불러왔다. 덕분에 오디션과 경연을 통해 과거의 곡들을 리메이크하거나 재해석한 곡들이 프로그램의 인기와 더불어 빠르게 음원차트를 점령하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원곡이 음원차트에 등장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슈퍼스타 K2’ 당시 참가자 강승윤이 경연곡으로 선보인 윤종신의 <본능적으로>는 발매 당시에는 차트에 들지 못했지만, 성공적인 리메이크로 발매 5개월 만에 차트 역주행에 성공했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흥행으로 시작된 복고 열풍도 역주행에 한몫했다. 2012년부터 tvN을 통해 방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는 각각 1997년, 1994년, 1988년 시대를 배경으로 해 시청자들에게 그 시절의 향수와 음악을 다시 기억나게 했다. 또한, 수준 높은 연출을 통해 케이블 방송 최고 시청률 경신과 전체 방송계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결국 일명 복고 열풍을 만들었다. 덕분에 1995년 곡인 뱅크의 '가질 수 없는 너'처럼 해당 프로그램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는 과거 곡들이 역주행하거나, 또는 과거 명곡과 가수를 찾는 JTBC의 ‘슈가맨 시리즈’가 방송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가장 역주행에 많은 기여를 한 플랫폼은 역시 유튜브와 SNS다. 유튜브와 SNS의 등장은 과거와 달리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입소문만 타면 빠르게 높은 조회 수와 함께 화제를 모을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 작용했다. 덕분에 한번 잊힌 음악들이 유튜브 영상이나 SNS를 통해 입소문을 타 음원 차트에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고, 대표적인 예시가 2013년 크레용팝의 '빠빠빠', 2014년 EXID '위아래'이다
현재 대중들에게 역주행이란 단어를 가장 강하게 인식시킨 것은 크레용팝의 '빠빠빠', EXID '위아래'이다. 크레용팝의 '빠빠빠' 같은 경우는 기존 그룹의 인지도 부족으로 발매 직후에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그러나 유튜브 뮤직비디오의 개그 컨셉이 조용히 입소문을 모으며 발매 2개월 만에 음원 차트에 등장했으며, 결국 음원 차트 1위를 차지했다.
EXID '위아래'는 더욱더 극적이다. 걸그룹 춘추전국시대라 불릴 만큼 수많은 그룹이 생기고 사라지고를 반복하던 당시 가요무대에서 EXID는 사실상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룹 중 한 곳이었다. 그러나 가수 행사 영상을 촬영하는 유튜버 ‘pharkil’가 업로드 한 EXID '위아래' 행사 영상이 일명 초대박을 쳤다. 해당 영상은 빠르게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퍼져나가며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했고, 결국 발매 1년이 지난 2015년 모든 음악 방송 1위를 겨며 쥐었다. 특히 '빠빠빠' 이후 조용히 해체한 크레용팝과 달리 EXID는 현재까지도 왕성한 활동과 인기를 끌고 있어 더욱더 인상적이다.
또한, EXID와 크레용팝의 사례를 직접 지켜본 소속사들과 팬들이 이러한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까지 시작하면서 이후에도 이애란의 '백세 인생',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 비의 '깡' 등이 역주행에 성공했다.
역주행의 명과 암.
그러나 역주행이 마냥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 유튜브와 SNS를 통해 무명가수들이 큰 인기를 끄는 것을 직접 목격한 이들이 이러한 구조를 악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음원 사재기’ 및 ‘바이럴 마케팅’ 이다.
'음원 사재기'는 일정 금액을 지불하여 특정 곡들을 강제로 역주행시키는 편법을 말한다. 정확히는 마케팅 회사가 가짜 계정을 다수 생성해 광고비를 받은 가수의 특정 곡 순위를 끌어올리는 방법이다. 해당 방법을 통해 자연히 잊혔던 곡들이 음원차트의 최상위권, 심지어는 1위로까지 역주행하게 되고 이를 통해 가수는 광고비 이상의 음원 이익과 인지도를 얻게 된다.
음원 사재기는 유튜브와 SNS가 음악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2010년대 초반부터 논란이 되었으며, 2020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이러한 곡들은 실제 인지도 부족으로 실력 있지만, 흥행하지 못한 곡들이 역주행하여 음악 팬들에게 다시 알려지는 것에 반해 실력, 컨셉, 예술성 등이 검증되지 못한 채 소비되어 음악 팬들에게 혼동을 일으킨다. 대표적으로 음원 차트 상위권을 차지한 일부 가수들의 콘서트가 예매율이 너무 낮아 취소되거나, 실력 없는 곡들이 사재기를 통해 진짜 실력 있는 곡들이 차트에서 쫓겨 나는 등의 상황은 음악 팬들이 반길 만한 상황이 아니다.
또 다른 문제는 유튜브와 SNS에 광고와 추천을 구분할 수 없도록 꾸며내는 '바이럴 마케팅'이다. 바이럴 마케팅이랑 바이러스처럼 전염되는 입소문을 이용한 마케팅을 의미한다. 흔히 파워 블로거, 높은 구독자를 가진 채널, 댓글 등에 대가를 주고 조작된 글을 작성하여 입소문처럼 보이는 광고를 제작한다. 음원의 경우에는 SNS의 높은 ‘좋아요’, ‘팔로우’를 가진 음악 추천 채널을 구매해 광고 받은 음악들만 의도적으로 추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또한, 유튜브에서는 자극적인 썸네일이나 내용으로 조회 수를 높인 후, 영상 안에는 특정 가수나 음악을 광고하기도 한다. 실제로 BBC에서 취재한 한 바이럴 마케팅 업체는 특정 곡 홍보에 1400만 원의 비용을 들였으며, SNS에 약 500만 건의 조회 수를 의도적으로 조작했다고 인터뷰했다. 이 업체는 페이스북 팔로워가 수만에 이르는 다수의 페이지를 운영하며 의뢰가 들어오면 해당 가수의 곡을 올려주는 식으로 홍보한다고 밝혔다.
물론 역주행 자체의 장점은 명확하다. 해체를 앞뒀던 브레이브걸스가 순수한 입소문과 꾸준한 위문 공연을 통한 인지도를 이용해 극적인 성공을 맞은 것처럼 역주행 자체는 소외된 가수들에게 큰 동기부여와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다.
또한, 좋은 음악은 결국 발견된다는 예술성의 가치도 포함한다. 현대 가요 무대는 너무 많은 음악이 생기고 잊혀져 오히려 수준 높은 곡들이 홍보나 인기 부족으로 묻힌다는 아쉬움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역주행 사례들은 결국 좋은 예술은 시대를 초월해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점에서 훌륭한 재조명이다. 이런 재조명은 음악을 순수하게 사랑하고, 지금도 좋은 음악을 찾고 있는 음악 팬들과 소비자들에게도 바람직하다.
실제로, 브레이브걸스의 경우 과거 수많은 위문 공연을 통해 얻게 된 삼촌 팬들이 이번 역주행 이후 도시락을 선물하거나, 응원 댓글을 남기는 등 화제를 모았고, 과거 곡들의 역주행들 또한 젊은 층에는 과거의 명곡을, 어른들에게는 그 시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면 큰 인기를 끌었다.
이렇듯, 역주행은 명과 암이 존재하지만, 무명 가수들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브레이브걸스는 최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버티다 보니 이렇게 좋은 날이 왔다. 버티기를 잘했다.”라고 역주행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수많은 실력 있는 무명 가수들이 역주행을 보며 꿈과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면 역주행 자체는 신선한 발견으로 다가올 수 있다. 다만, 역주행을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음원 사재기, 바이럴 마케팅 등에는 현명하게 음원 팬들이 대처하여 앞으로도 다양한 역주행 곡이 등장해 소비자도 가수도 함께 기뻐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