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22·삼성생명)이 4일 오후 3시 30분(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포르트 드 라샤펠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4강전에서 그레고리아 마리스카 툰중(6위·인도네시아)을 2-1(11-21 21-13 21-16)로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역전승이었다.
한국 배드민턴 선수가 올림픽 단식에서 우승한 것은 1996 애틀랜타 대회 방수현이 유일하다. 안세영이 한 번만 더 이기면 그 대업을 잇게 된다.
결승까지 올라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야마구치 아카네(6위·일본)와 8강전도 1세트를 먼저 내준 뒤 뒤집었는데 4강전 역시 첫 게임을 뺏긴 뒤 힘겹게 역전승을 따냈다.
경기 후 안세영은 "조금 힘들다"며 "일부러 1게임을 내주는 전략을 택한 건 아니다. 너무 많이 긴장했더니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최대한 긴장하지 않으려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8강전과 다르게 4강전에서는 바람의 방향이 정반대로 불어 '큰일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 때문에 셔틀콕을 더 힘있게 쳐야 하는 등 체력 소모가 컸다. 다행히 (열심히 운동한 덕분에) 체력이 많이 좋아졌고, 잘 이겨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8강전과 4강전에서 가시밭길을 걸었지만, 벼랑 끝에 몰릴수록 안세영은 더 단단해졌다.
그는 "솔직히 1게임을 내주면 많이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정신이 번쩍 들게 된다. 뭐랄까, 나를 더 몰아붙이게 되는 힘이 생긴다"며 "배드민턴 단식 경기에서는 1게임부터 3게임까지 같은 체력과 속도로 뛸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극한에 몰려 동기부여를 얻으니 나쁘지도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3게임에서 짜릿한 뒤집기를 펼친 안세영에게도 큰 위기가 있었다. 14-6으로 크게 앞서던 그는 툰중의 거센 반격에 16-13까지 따라잡혔다. 앞서고 있었지만 툰중의 기세가 워낙 좋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다행히 안세영은 날카로운 공격과 상대의 범실을 묶어 4점을 내리 따며 승기를 잡았다.
안세영은 당시 상황에 대해 "자주 그런 일이 있었고 따라 잡힌 적도 있었다. 그렇게 패하면 많이 속상했고 화도 났다. 이번에는 그런 아픔을 겪지 않으려고 이 악물고 뛰었다"고 복기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안세영은 이제 역전의 명수가 됐다.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천위페이(2위·중국)를 상대로 짜릿한 뒤집기를 펼쳐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역전극에 자신이 있냐는 질문에 안세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욕심이 많고 성급해서 그런 상황을 자초하는 것 같다"면서 "다행히 역전 경험을 축적하면서 예전보다는 (뒤지고 있어도) 마음이 조금 편한 편이다. 내가 반드시 따라잡고 역전할 수 있다는 긍정적 생각으로 임했다"고 설명했다.
안세영과 허빙자오(9위·중국)이 맞붙는 결승전은 5일 오후 4시 45분에 열릴 예정이다. 안세영은 허빙자오와 역대 전적에서 8승 5패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
많은 이들은 안세영의 결승 상대로 꼽혔던 천위페이가 8강에서 탈락해 그의 금메달 도전에 청신호가 켜졌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안세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천위페이와 올림픽 결승에서 맞붙으면 멋있는 그림이 됐을 텐데 아쉽게 이뤄지지 않았다"며 "하지만 늘 강조했듯 천위페이뿐 아니라 모든 선수가 라이벌이라 생각한다. 다들 잘하는 선수들이고 올림픽은 변수가 많은 대회다. 천위페이의 탈락이 금메달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결국 (상대를 신경 쓰지 않고) 내가 잘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안세영은 "낭만 가득한 해피엔딩을 꿈꾸는데 이 들뜬 마음을 내일이면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 조금 아쉽기도 하다. 그 약속을 지키기는 것만 생각하겠다"며 "국민들이 응원해주셨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달려올 수 있었다. 마지막 결승에서도 힘을 낼 수 있도록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