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식 전개, 작가가 주는 메시지
다양한 시점에서 보는 다양한 이야기
동네 속 정답고 소소한 힐링
“저는 제 극중 이름을 3,4회차 대본을 읽을 때까지 알지 못했어요”. 배우가 자신의 극중 역할 이름을 몰랐다니 상상이 되는가? 이 말은 실제로 우리들의 블루스에 출연한 배우 이병헌이 제작발표회에서 한 말이다. 왜 이병헌은 자신의 이름을 한 번에 알 수 없었을까? 우리들의 블루스, 이 드라마만이 시청자들에게 줄 수 있는 매력은 무엇인가?
옴니버스식 구성을 통한 작가의 메시지
톱스타들의 대거 출연으로 대중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가 인기 방영중이다. 스타 작가의 작품과 톱스타들의 만남으로 주목을 받은 만큼 화제성은 뛰어났다. 영화에서 자주 보이는 배우들의 드라마 활약, 실제 배우 커플의 한 프레임 등장 등 언급이 되는 이유도 다양했다. 그 중 가장 언급이 많이 되는 이야기는 ‘옴니버스식 구성’인 드라마에 따라 매 회 바뀌는 대중들의 이야깃거리이다. 옴니버스식 구성이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독립된 여러 개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방식으로 짧은 이야기들마다 주로 비춰지는 주인공이 다른 구성이다. 다 다른 구성과 주인공이지만 결국 주제는 하나를 향하고 있다는 것도 옴니버스식 드라마의 특징이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주인공들의 삶을 다양한 시점과 각자의 삶의 에피소드로 풀어간다. 제주도의 삶이라는 하나의 주제에서 직업별로, 자신의 가정 내 역할 별로 겪는 다양한 삶의 문제를 밀착해 이야기한다. 이는 다소 한국 드라마에서는 생소한 구성이다. 보통 드라마의 경우 첫 화부터 최종화까지 남녀 주인공을 위주로 기승전결대로 스토리가 흘러간다. 하지만 우리들의 블루스는 1, 2화에 등장한 최한수(차승원 분)이 다음화부터는 아예 등장하지 않기도 하고, 초반 회차에서 5분도 채 나오지 않은 이동석(이병헌 분)은 다음 회차에 내내 나오기도 했다. 한 두명의 주인공의 감정과 서사에 몰입하는 것에 익숙한 드라마 시청자들에 ‘옴니버스식 구성’ 드라마를 기획한 노희경 작가는 어떤 의도였을까.
바로 ‘우리 삶은 다 각자가 주인공이다’라는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노희경 작가는 “우리 삶은 다 주인공이지 않은가? 모두가 주인공인 드라마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덧붙여 노 작가는 ‘제주의 괸당문화’를 언급했다. 괸당문화는 주변인 모두가 친인척인 개념을 말한다. 노 작가는 “남이 아닌 우리라고 여기는 제주 사람들의 문화를 보고 사라져가는 한국의 뜨끈한 정서를 보았다”며 모두가 주인공이라는 메시지를 전할 배경을 제주도로 정한 이유를 밝혔다.
한 드라마 속 다양한 이야기
우리들의 블루스는 모두가 주인공이란 메시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특정 에피소드에서 동시에 주가 되는 캐릭터들은 같은 일을 겪더라도 각자의 감정과 생각이 다를 뿐더러 시청자에게 남기는 여운도 다르다. 많은 화제를 낳았던 첫 에피소드 ‘한수와 은희’(차승원과 이은희 분)에서 한수는 딸의 꿈을 위해 아내와 딸을 미국에 보냈지만 생활고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그림을 그려냈다. 반면 은희는 성공한 사업으로 제주에서 내로라하는 부자가 되어있었지만 사랑을 찾지 못했고, 첫사랑인 한수를 보며 다시 설레는 감정을 그려냈다. 이 이야기는 남녀노소 다양한 시청자의 각기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한 40대 여성 시청자는 “이 이야기를 보고 고등학생 시절 첫사랑이 떠올랐다”며 “졸업 이후 동창회도 안 나가고 따로 들려오는 소식도 없어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나도 은희처럼 첫사랑이 이뤄지지 않았었고 항상 물음표로 남아있었기에 확실히 감정을 정리하고 담담하게 미소 짓는 은희가 멋있었다”고 감상을 전했다. 또 30대 남성 시청자는 “공부를 정말 잘하던 동창 친구가 동창들에게 차례로 연락해서 돈을 빌리고 다니던 20대 때가 생각이 났다. 특히 졸업하고도 한 지역에 사는 동창들 사이의 일이라 그 친구와 한수의 일이 겹쳐 보여 안타깝기도 하고 그 친구가 한수처럼 잘 털어 냈기를 바란다”라며 각기 다른 느낌을 전했다.
이렇듯 다양한 시점의 감정을 동시에 전달한다. 또한 우리들의 블루스는 옴니버스식 구성을 제대로 이용한다. 매 회 다른 이야깃거리를 시청자에게 제공한다. 한 드라마에서 나올 수 있다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상황에 처한 다양한 성향의 캐릭터 등장한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5화 ‘영주와 현’ 에피소드에서 ‘청소년 임신’이라는 주제를 다뤘다. 중년들의 삶과 청춘 회상을 다뤘던 드라마에서 나올 수 없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블루스는 옴니버스식 구성을 통해 자연스럽게 풀어낼 수 있었다.
‘영주와 현’ 회차에서는 영주(노윤서 분)와 현(배현성 분)은 학업 도중 계획되지 않은 임신문제를 맞닥뜨리게 된다. 이들은 뱃속의 아기를 어떻게 할 지 갈등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이 두 인물의 아버지는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동창 관계로 드라마 초반부터 표현되어 시청자들의 몰입감을 높인다. 이 에피소드 또한 시청자들에게 뜨거운 이야깃거리를 제공했다. 드라마 게시판을 통해, 다양한 드라마 클립 글을 통해 SNS와 댓글로 대중들은 자신의 생각, 경험, 감정 등을 공유하고 이야기한다. 폭넓고 다양한 이야기지만 자연스러운 흐름 덕에 청소년 임신 문제 외에도 우울증으로 인해 이혼을 하고 아들의 양육권 문제를 다루는 민선아(신민아 분) 에피소드, 어머니 강옥동(김혜자 분)과 연을 끊고 사는 이동석(이병헌 분)의 에피소드는 어떻게 풀어질지, 어떤 이야깃거리를 제공할 지 시청자들의 기대를 낳고 있다.
정다운 인물들, 소소한 힐링
옴니버스식 구성은 매 회 바뀌는 등장인물과 연결성 없는 주요 에피소드를 다루기에 자칫하면 복잡해지거나 몰입도를 떨어뜨려 하나의 주제를 잃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들의 블루스는 ‘등장인물 사이의 유대관계와 상황을 적절히 잘 풀어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주요 에피소드 인물로 나오지 않는 주변인물들도 매회 한 프레임 씩은 등장해 서사를 깔고 중간 중간 상황을 비추며 시청자들에게 베이스를 쌓았다. 짧은 장면은 하나하나 모여 시청자를 드라마 속 제주도 주민들의 삶 사이로 이끈다. 등장인물끼리 오랜 시간 유대관계를 쌓아온 것처럼 각 인물을 매회 시청자와 유대관계를 쌓는다. 덕분에 ‘누구는 이런 성격, 누구와 친하고 누구와는 사이가 좋지 않다’ 등을 시청자들이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이는 옴니버스식 구성에 큰 도움이 된다. 이제 우리들의 블루스는 다음 화에 어떤 에피소드가 와도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고, 낯설지 않다.
이병헌은 인터뷰를 통해 이에 대해 “어떤 회는 내가 주인공이고, 어떤 회는 내가 지나가는 사람처럼 잠깐 등장한다. 그게 재밌다”라며 “드라마의 레이어가 쌓여가는 느낌이었다. 그곳에 진짜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카메라만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라고 밝혔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주요 에피소드 외에도 항상 다른 인물들의 각각의 삶은 진행되고 있음을 나타내기에 실제 주민들의 삶을 찍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준다.
우리들의 블루스에는 배우가 많다. 그렇기에 동네에 한 명쯤은 있을 것 같은 시장 아주머니들, 정다운 할머니들, 사랑을 찾아 해메는 젊은 남녀들, 부모님에게 짜증내는 학생들 등 다양한 성격과 연령, 직업을 가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시청자가 누구든 공감을 느끼게 되고, 어떤 상황이든 정답게 느낄 수밖에 없다.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는 “우리들의 블루스가 다양한 연령의 배우들이 다채롭게 나와 폭 넓은 관심사를 가져가고, 일상을 파고드는 노희경표 감성이 대중적으로 통했다”라고 평을 내렸다.
동네 할머니들끼리의 만담, 사이 안좋은 동네 아저씨들끼리의 운전 싸움을 중재하는 씩씩한 동창 아줌마 등 짧게 비춰지는 각 화의 순간들은 ‘모두가 아는 사이라는 정다움’을 기반으로 웃음을 자아낸다. ‘서로의 집에 숟가락 개수까지 아는 게 제주도’라는 대사처럼 실제로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삶과 상황을 알고, 남의 집 자식도 자신의 아이처럼 신경 쓰고 돌본다. 하나의 마을이 동네를 넘어 한 가족인 느낌은 현대인들에겐 있을 수 없는 이야기로 느껴져 더욱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 낯설지만 정겹고, 듣다 보니 익숙해질 것만 같은 제주도 사투리와 아름다운 제주 바다의 경관 또한 이웃과의 왕래가 끊긴 도시의 현대인들과 여행을 가지 못하는 직장인들의 그리움과 낭만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들의 블루스 감독인 김규태는 “모든 삶을 응원하고 우리는 행복할 가치가 있다는 주제의식을 조금 다른 형식과 밝은 톤으로 풀어내는 드라마”라며 대중이 편안하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덧붙여 드라마의 반응에 대해 “성비도 그렇고 다양한 연령층이 등장하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이기에 더욱 공감대가 높을 것으로 생각한다. 매우 보편적인 정서를 다뤄 글로벌한 공감도 기대해 본다”고도 말했다.
숨막히는 긴장감과 놀라운 반전, 자극적인 전개가 드라마의 무기가 되었던 시대는 지났다. 누구나 겪을 법한 소소한 이야기라도 인물의 감정선을 어떻게 드러내느냐, 시청자에게 보편적이고 공통된 감정을 어떻게 전달해 여운을 남기느냐가 관건인 ‘슬로우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치열한 복수, 강렬한 사랑이 주가 아닌 누구나 느껴본 감정, 있을 법한 이야기를 기반으로 등장인물, 드라마 에피소드, 시청자의 감정이 합쳐져 하나의 드라마가 된다. 대중들은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시청자에게 새로움을 던진 ‘우리들의 블루스’처럼 현대인들의 정서를 파악한 다양하고도 새로운 드라마가 나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