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외래어 사용, 소통을 가로막아
무분별한 외래어 사용, 소통을 가로막아
  • 안지윤 기자
  • 승인 2021.04.19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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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크아웃' = 포장, '페스티벌' = 축제

기업, 공공기관, 정부까지 외래어 남용

노인들을 넘어 국민들과의 소통 단절

대체 가능한 순화어를 찾아 우리말 사용 권장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연예스포츠신문] 안지윤 기자 = 최근 온라인에서 많은 공감을 받은 글이 있다. 글쓴이는 집 앞 패스트푸드점에서 음식을 주문하려던 엄마가 키오스크 기계를 사용하지 못하여 결국 20분 동안 헤매다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연을 SNS에 남겼다. 

4차산업혁명 시대 속 디지털 소외계층에 대한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한 글이었다. 키오스크는 처음 사용해보는 사람들에겐 매우 생소한 기기다. 단계도 복잡하고 주문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 확인할 길이 없어 당황스럽기도 하다. 사실 '키오스크'라는 단어 자체도 생소했다. 우리말로 쉽게 바꿔보자면 '무인 결제기'라고 부를 수 있다.

기술의 발전이 디지털 소외계층을 만들어낸다는 우려와 함께 외래어 사용 역시 깊게 생각해봐야할 문제다. 세계화와 정보통신기술의 급격한 발달로 다양한 용어가 등장했고, 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외래어 사용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래어는 '외국에서 들어온 말로 널리 쓰이는 단어'를 뜻한다. 주로 새로운 기술이자 상호명, 현상 등 외국에서 시작된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며 굳어진 말이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사용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불필요한 사용도 존재한다. 외래어를 대체할 수 있는 순화어가 있는 경우가 그렇다. 위에서 언급했던 '테이크아웃', '투-고 서비스', '드라이브 스루',  '밀키트' 등등 우리의 일상 속에서 다양한 외래어가 사용되고 있지만 과연 꼭 필요한 단어들일까. 

 

우리나라 외래어 사용 실태

"드시고 가시나요?" "포장이요" "네, 테이크아웃 맞으시죠?"

이 대화는 스타벅스 직원과 대학생 A 씨(24세) 사이의 대화다. 평소 의도적으로 외래어 사용을 피하려 하는 만큼 쉽게 바꿀 수 있는 단어들은 우리말로 바꿔서 사용한다는 그는 굳이 다시 '테이크아웃'이라고 물어오는 것에 당황했다. 둘 다 똑같은 의미의 단어임에도 외래어 사용이 습관으로 굳어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2018년 우이신설행 열차 개통 기념 행사. / 출처 : 서울시청 홈페이지
2018년 우이신설행 열차 개통 기념 행사. / 출처 : 서울시청 홈페이지

정부와 공공기관에서도 외래어 남용은 계속되고 있다. 2019년, 광주지역 지자체가 추진하는 사업 명칭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헌책방 르네상스, 클린업 동구와 같은 외래어 혼용사례가 많았다. 다른 지자체나 기업에서도 '** 페스티벌', '** 버스킹' 등과 같은 사업명이 자주 등장했다. 2020년 7월에는 교육부의 사업 명칭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블렌디드 러닝'이 중심에 있었다. 사업 내용을 확인해보면 결국 '친환경 첨단 학교'와 '온ㆍ오프라인 수업 병행'을 뜻한다.

위에서 언급했던 단어들은 모두 대체 가능한 순화어가 존재한다. '키오스크'는 무인결제기, '투-고(TO-GO) 서비스' 는 포장 배달 서비스로 대체 가능하다. '페스티벌'은 축제, '버스킹'은 길거리 공연으로 바꿀 수 있고, '르네상스'는 운동, '클린업'은 깨끗한, 대청소 정도의 의미로 바꿀 수 있다. 굳이 외래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충분히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국립국어원에서도 공공언어 통합지원 서비스 중 하나인 '우리말 다듬기'와 '새말모임'을 통해 다양한 외래어를 우리말로 다듬고 있다. 소강춘 국립국어원 원장은 한 매체를 통해 "무조건 순우리말을 고집하지는 않고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이라면 온라인, 디지털 등 익숙하고 굳어져 널리 쓰이는 외래어도 일부 활용하는 방향으로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외래어 순화에 '꼭 순우리말을 사용해야 하냐', '너무 억지스럽다'라는 반응을 보이는 누리꾼들의 주장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단어를 순화시키고 있다. 

 

외래어 사용, 언어 소외와 소통의 어려움 불러일으켜

'우리말은 어색하다'라는 우려 속에서도 순화어를 만들어내고, 외래어 사용 보단 우리말 사용을 권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외래어 남용은 언어 소외계층을 만들어낼 수 있다. 외국어에 취약한 노인계층이 주로 해당된다. 당장 위의 사례들만 보더라도 노인들이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외래어는 많다. 맥도날드 매장의 키오스크는 주문 시작부터 '매장에서 식사'와 '테이크아웃'이라는 선택지를 골라야한다. '테이크아웃'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면 주문 시작부터 막히는 것이다. 

디지털 기기도 어려운데 불필요한 외래어 사용까지 더해지며 디지털 장벽, 소통의 장벽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스마트폰을 사용한 지 6년이 넘어가는 B씨(76세)는 "플레이버튼을 누르라는데 찾아봐도 없더라. 알고보니 재생버튼이었다"라고 말하며 아직도 모르는 말이 많다며 고충을 호소했다.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팬데믹'을 검색했다. 연관 검색어로 '팬데믹 뜻'이 가장 먼저 등장한다. /출처 : 네이버 포털 검색창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팬데믹'을 검색했다. 연관 검색어로 '팬데믹 뜻'이 가장 먼저 등장한다. /출처 : 네이버 포털 검색창

외래어로 인한 언어 소외계층 형성은 세대 간의 소통 단절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비단 노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젊은 층에서도 외래어로 인한 소통과 이해의 어려움이 생기고 있다. 포털 검색창에 '팬데믹'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보이는 연관 검색어가 '팬데믹 뜻'이다. 코로나 이후 팬데믹, 언택트, 코로나 블루 등 낯선 외래어가 많이 등장했다. 특히, 언택트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만들어낸 '콩글리시'다. 이에 누리꾼들은 '비대면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걸 굳이 영어를 썼다', '나도 이해가 안되는데 노인분들은 오죽할까'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노인들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해당 단어들의 뜻을 모르고 있었다. 

 

정부와 지자체, 기업, 국민 모두의 노력 필요

전문가들 역시 외래어 남발은 소통을 가로막고 소외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의견을 내비치고 있다. 특히 방송과 공공기관의 책임의식을 중시했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쉬운 말 쓰기'는 국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고 민주주의 사회를 만드는 첫 걸음이다. 어려운 말을 쓰면 생길 수 있는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신조어와 외래어 등 어려운 말을 우리말로 쉽게 쓰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도 필요하다.  고광춘 경기도 국어책임관은 "세계에서 인정받은 우수한 한글이 있음에도 외래어를 거리낌 없이 쓰는 일은 올바르지 않다"라고 말하며 외래어 남발에 대한 심경을 드러냈다. "시민과 가장 밀접한 공공기관에서, 쉽고 이해하기 쉬운 말을 써야한다. 공직에서부터 올바르게 바꿔가야 한다"라고 덧붙이며 공공기관으로서 시민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강조했다. 

기업의 외래어 사용 역시 일상 속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만큼 순화가 필요하다. 식품, 화장품, 건설업계에서 유독 외래어 사용이 돋보인다. 라네즈, 자이, 아이파크 등과 같이 화장품과 건설 업계 상호명에서 나타나기도 하고, 테이크아웃, 디핑소스 등 식품 업계 용어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이은형 건설정책 책임연구원은 건설업계 외래어 사용이 '고급화 전략'에서 시작되었다고 밝혔다. "2000년 전 후 아파트에 한자나 외래어 브랜드를 붙여 고급화 차별화하는 전략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외래어는 더 있어보인다는 인식 탓에 외래어 단지명이 대세가 됐지만 향후 이 같은 인식이 점차 바뀔 가능성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화장품과 식품 업계 역시 비슷한 이유로 외래어 사용이 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지나친 외래어 사용은 오히려 소비자와의 소통을 가로막기도 한다. 광고 내용이나 서비스명 선정 시 불필요한 외래어보단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소비자 중심의 단어 선택이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다.

 

언어의 본질은 소통

일반 국민들 역시 언어사용 습관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 대체할 단어가 있다면 불필요한 외래어 사용보단 우리말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어떨까. 이미 습관으로 굳어진 단어들이 많지만 우리말 사용도 습관으로 만들 수 있다. 방송과 기관은 우리말 사용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시청자, 국민과 소통하고 기업 역시 소비자들에 눈높이에 맞춘 용어 사용이 필요하다. 소통은 언어 사용의 가장 큰 목적이다. 우리말을 아끼며 원활한 소통이 이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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